왕좌의 게임 시즌 4가 4월부터 방영된다고 한다. 

다시, 왕좌의 게임 시즌이 되었으니, 내 블로그의 캐시카우(거의 블로그 오시는 분들의 95% 정도는 왕좌의 게임 관련어로 검색해서 오시는 듯 하다)라고 할 수 있는 이 주제에 대해 포스팅을 안할 수가 없겠다. 

우선, 가볍게, 캐릭터들에 대해서.

정보를 기대하시는 분들은 좀 실망하시리라. 예전에 몇몇 인물들에 대해 나름대로 열전처럼 쓴 글들이 있는데, 여기서는 인물마다 키워드 몇 가지씩만 적어보려고 한다. 


에다드 스타크 : 명예와 가족

제이미 라니스터 : 명예, 즉 서약을 지키는 것. 사랑. 사람들의 평판. 위악. 재치. 

브리엔느 : 명예, 즉 서약을 지키는 것. 외모와 여자라는 핸디캡. 사랑.

산도르 클레게인(클레가네) : 분노. 기사도. 고독

아리아 스타크 : 소속되고 싶어하는 욕구와 고독한 처지. 복수. 적과 내 편. 살인의 정당성

다보스 : 충성. 상식

스타니스 바라테온 : 능력과 매력의 불일치. 정의. 비관용. 목적과 수단

존 스타크 : 성장. 리더쉽. 현실과 이상. 비웃음 받는 선함. 관용과 화해. 

티리온 라니스터 : 핸디캡. 풍자. 유머. 재치. 적대적인 가족. 위악. 선과 악의 경계. 책략. 

대너리스 타르가리옌(타라가르옌) : 리더쉽. 현실과 이상. 긍지. 

세르세이 : 여성이라는 핸디캡. 어리석은 리더쉽. 두려움. 단견. 

산사 스타크 : 환상과 현실. 자기중심성. 책략의 학습. 

리틀핑거 : 조커. 책략. 입신양명. 

테온 그레이조이 : 정체성. 자긍심. 멸시에 대한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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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상의 책과 음악은 공공재이다. 즉, 한 사람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소비를 방해하지 않는다. 소비가 늘어나도 생산비용이 더 들어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공재의 가격은 0일 때가 가장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다.
책과 음악 같은 콘텐츠는 온라인 상에서는 공짜로 누구나 소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물론 이렇게 하면 책을 쓰거나 출판하거나 작곡을 하고 노래를 하는 사람들은 댓가를 얻을 수가 없고, 소비할 수 있는 새로운 책이나 음악이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특허를 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저작권을 부여한다.
하지만, 전자도서관에서 온라인 책을 대출해주고 반납받고 하는 프로세스는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
출판자와 작가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온라인 책을 공공에서 운영하는 전자도서관을 통해 제한 없이 소비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전자도서관에서 집계되는 활용도에 근거해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는 것이 합리적이다.
음악의 경우에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액결제를 하고 그 허용된 범위 안에서 음악을 제한 없이 소비한다. 나처럼 헤비하게 음악을 소비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엔 그렇게 많지 않은 금액으로 충분한 만큼의 음악을 소비한다. 정액결제에 의해 허용된 수만큼의 곡도 다 다운받지 못하고 지나는 경우도 자주 있으니까 말이다.
음악의 경우엔 거의 공공재에 적합한 소비 방식이 정착된 셈이다.
책도 온라인 상에서의 소비가 일반화되면, 음악과 비슷한 방식으로 소비 방식이 바뀌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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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이 행복을 유지하는 편이 불행한 사람이 불행을 벗어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습관을 고치기 어려운 것이나, 가치관의 근본적인 부분이 잘 바뀌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청소년기부터 행복한 사람의 평생은 불행한 청소년기를 보내는 사람의 평생과 시작 부분부터 큰 차이를 갖는다.
어른들은 무슨 배짱으로 유연한 젊은 정신들을 분재를 만들듯이 비틀어대는 것일까?
예를 들어, 자신과 남을 비교하며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갖는 것에는 심한 부작용이 있다. 나는 그런 감정에 심하게 사로잡힌 적도 있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왔던 시기도 있기 때문에 그 영향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
비교하고 상대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일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한가지 기준의 절대화, 전국적인 규모의 상대평가, 그에 따른 처벌과 보상 따위가 그런 경향을 어린 마음들 속에 강화시켜 평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까?
일진이나 왕따도 그들에게 몰아넣은 스트레스가 폭발하는 한 방식일 것이다. 자신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고 앞으로의 미래도 그럴 것이라고 예감되는 상황, 어른이라면 이런저런 탈출구를 찾을 수 있겠지만 경험은 너무 적고 미래는 한없이 커보이는 아이들의 빗나감을 그들의 탓이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이 다 잘 나오면 선생님들은 출제하는 시험 문제 수준을 올린다고 한다. 평가가 변별력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올린 학업능력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될까? 우리가 배운 것들 중 정말 삶과 직업에 도움이 된 것들이 무엇인가?
지식이 아니라 인성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그 인성이라는 것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윤리교육 시간을 늘리면 되는 것일까? 인성이라는 것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무엇을 가르칠까 이전에, 인생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꽃피는 시기이기도 한 청소년기에 어떤 경험의 기회들을 제공해줄 것인가, 어떻게 그 시기가 평생 힘이 될 행복한 기억으로 남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불행한 사회가 불행한 교육을 낳고 불행한 교육이 불행한 사회를 낳으니,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다. 타협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하면서 끌고 나가는 수밖에.
(아이가 있으면서 이런 글 쓰면 좀 있어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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