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록 수사 결과에 대한 기사들을 네이버 같은 포탈에서 보면, 어느 정도 균형이 맞추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언론사별 사설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의 메이저 신문들은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진 사실들'을 전제로 하고 특정 정파를 매도하면서, 이 정도로 정리하고 정쟁을 그치자고 한다.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서는 사법부 판단을 기다리자면서 아무런 의견도 없는 양 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그런데 가장 뻔뻔스러운 건 의외로 서울신문 사설이었다. 

"이미 고인이 된 이상 노 전 대통령이 왜 그런 지시를 내렸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복구된 초본의 ‘임기 중 NLL 해결’이라는 노 전 대통령 발언이 수정본엔 ‘임기 중 NLL 치유’로 바뀐 점, 그리고 김 전 위원장의 반말투 발언이 존댓말로 바뀌고 반대로 과공(過恭)으로 비쳐질 노 전 대통령의 발언 수위는 다소 낮아진 점 등을 감안하면 자신의 언행이 훗날 정치적·역사적 논란이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임기 중 NLL 치유로 바뀐 것은 녹음을 듣고 오기를 수정한 것이라고 검찰 발표에 나와 있다. 이 사설은 그조차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설마 그래도 신문사 사설에서 고의로 그랬을까? 

내 생각에는 인지부조화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논리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 들면, 검증 없이 갖다 쓰는 것이다. 

누구든 인지부조화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정도가 납득이 안되게 심할 때, 저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주장할 수 있겠구나, 싶은 수준을 넘어설 때, 그리고 우리나라의 언론 권력들이 그렇게 상식을 벗어나는 수준이라는 것을 보일 때면, 의아하고 암담하다. 

서울신문 다음은 동아, 그 다음은 조선, 그나마 중립에 가까운 척 하지만 그래도 기울어져 있는 것이 중앙의 순인 것 같다. 

내 생각에 지금 박종철 사건이 다시 일어났다면,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정부 주장을 그냥 언론에서 받아 쓰거나, 아니면 과거에 그런 쇼크사 사례들이라도 찾아서 보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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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적 가치

저자
브라이언 파머 지음
출판사
문예출판사 | 2007-01-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지구를 만들기 위한 지식인 16인의 자...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올해는 영감돋는 책들을 여러 권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 중에서도 이 책.

회사 서고에서 큰 기대 안하고 가볍게 집어든 책인데, 읽는 동안 내내 힘을 북돋아주는 영양제를 먹는 것 같았다. 

브라이언 파머라는 교수가 진행하는 하버드 강좌에서 초대한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과 행동가 16인이 학생들과 주고받은 문답 내용이다. 

사려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음 속의 분노에 불을 붙이는 사람도 있고, 열혈 행동가도 있다. 교수도 있었지만 현실에서 발언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메시지들에 더 힘이 있었다. 

주제는 다양하다. 국제 분쟁, 빈곤한 국가들의 의약품 공급, 공중보건복지 교육, 생명윤리, 종교와 시장, 교육과 평등, 노동과 소비, 페미니즘 등. 

이상주의 개론이라고 부를 만 하다. 

몇몇 구절을 인용하면 이렇다. 


------------------------------


"대사님, 때때로 옳은 행동은 오직 55%만 옳습니다."

이 말은 제 인생에서 누군가 제개 해준 매우 중요한 말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에 대해 생각해보면, 당신이 55% 쪽에 있는지 45% 쪽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45% 옳은 쪽에 있더라도 자신의 처지에 관한 엄청난 주장들을 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 45%가 옳은지에 관한 글들을 쓸 수 있고 그 45% 옳은 것들을 묘사하는 책을 쓸 수도 있습니다. 

뒤돌아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옳은지 모르고, 심지어는 돌아보더라도 자신이 옳은지 모를 수 있습니다. 

당신은 헌신하거나 아니면 그저 무기력하게 있거나 할 처지에 있습니다.



시장은 단지 경제생활에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고, 우리가 삶에서 중요하다고 믿는 것, 우리가 추구하는 것, 우리 자신과 사회의 문제점이라고 믿는 것, 우리가 해야 할 것에 영향을 끼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시장은 몇억 명의 사람들이 살면서 따르는 가치와 의미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과거 많은 사회에서 이 기능은 종교 또는 신의 몫이었다고 저는 주장합니다. 

시장은 이제 말 그대로 신입니다.

.....

시장 신이 전하는 복음은 우리가 결코 충분히 소유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더 필요하다는 거죠. 

시장 종교의 전체 논리는 축적과 성장과 확장을 바탕으로 삼습니다. 



제가 발견한 사실은, 돈과 소비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도는 그들의 삶에서 벌어지는 일에 맞춰져간다는 겁니다. 

노동자들에게 임금 인상을 원하느냐, 아니면 더 많은 여가시간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아주 많은 이들이 여가시간을 원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체제는 여가시간을 주지 않고 대신 돈을 줬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쓰고 이런 지출에 길들여졌습니다. 

조사원들이 한 해 또는 두 해 뒤에 다시 가서 같은 질문을 하면, 그들은 다시 현재 지닌 것에 만족한다고 말할 겁니다...

노동시간은 그들의 선호도를 반영하는 것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얼마를 일할지 스스로 선택하고 다시 한번 자신들이 원하는 바로 그것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체제가 이와 정반대로 작동한다는 겁니다.

노동자들은 결국 자신들이 소유한 것을 원하게 되어 있고, 그래서 그들의 선호도는 노동시장에 존재하는 것에 적응하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바로 그 순간 때문에 30년 동안 활력을 얻어왔습니다. 

너무나 큰 실패였으니까요. 

여러분은 실패의 순간에 더 많은 걸 배우게 됩니다. 

그 시절로 돌아가서 '왜 그렇게 기분이 나빴지? 내가 무엇을 배웠지? 단지 나뿐만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타인들을 위해서 내 인생에서 뭘 다르게 할까?'라고 말하는 걸 두려워 마세요. 

당신에게 부닥쳐 오는 것들과 당신을 앞으로 내모는 것들을 붙잡아 그 힘으로부터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지 교훈을 얻을 수 없다면,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만드는 기본 연결고리를 놓치는 겁니다. 



인생의 마지막에 여러분이 '이 일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어'라고 말할 수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저는 대학원생들과 함께 일할 때, 특히 여학생들과 함께할 때, 목소리를 낮추고 힘을 집어넣으라고 합니다. '단지'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저는 단지 이 질문을 하고 싶어요' '아마도 저는 단지... 세상을 구하고 싶은 것이라고 단지 생각해요.' 

권한을 약화시키는 어떤 식의 말도 하지 말라고요. 

꾸밈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

남성이 여성 대신 다른 남성을 이사회에 들어오게 하는 건, 자신들에게 편안한 사람들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나쁜 놈들이어서가 아닙니다. 

그래서 당신이 한 질문에 대한 답은 기본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여성들은 가로막고 제동을 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저는 신에 대한 믿음에 얽힌 사실 관련 문제 측면에서, 신이 있느냐 없느냐에 관한 의견 일치가 아주 어려울 것임을 알려주는 역사적인 경험들을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누군가 신에 대한 특정한 믿음 또는 특정한 경전들에 대한 믿음에 헌신하는 윤리적 자세를 취한다면, 아주 다른 관점을 지닌 이들과 의견 일치를 이루길 진정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럼 출발 지점으로 삼아야 하는 게 무신론이라는 뜻일까?

글쎄요, 진정으로 의견 일치를 이루려 하거나 모든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 모두가 사리를 따지고 이해할 수 있는 공통된 능력을 지닌 덕분에 가능한 방식으로 윤리적 관점을 제시하려고 하면, 

신과 특정 경전에 관한 자신의 관점에 괄호를 칠 수밖에 없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관점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관점들이 당신 특유의 관점이고, 신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특정한 경전이 신의 영감을 받아서 쓴 것인지 아닌지 의견이 다른 이들과 의견 일치를 이루는 데 당신의 관점이 적절한 기반이 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일본말을 할 줄 아는 동료에게 밑부분에 새긴 글을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이런 내용이더군요. 

"내가 삶에서 배운 게 하나 있다면, 그건 어느 정도면 충분한가 하는 것이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것 하나로도 내 일본 여행 전체의 가치가 충분하다."



소피아라는 이름의 여인 사진을 여러분에게 남기겠습니다. 

그녀는 크로아티아의 작은 마을에 살았습니다. 

나이 든 여성입니다. 

매일 그녀가 하는 일이 하나 있었는데, 정오에 교회에 가서 벽에 묶여 있는 끈을 풀고 그걸 잡아당겨 첨탑 위의 종을 울리는 거였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세르비아 세력이 탱크를 타고 한 마을씩 차례로 밀고 들어와서는 카톨릭교도인 크로아티아인들의 집 전체를 포격했습니다. 

그러곤 마침내 교회에 도착합니다. 

그들은 교회에 포격을 하고, 마지막에 첨탑에 포를 쏩니다. 

그리고 밀고 들어오면 이제 세르비아인들의 마을이 되는 겁니다. 

교회가 포격으로 무너졌지만, 매일 정오 교회 마당에서 이 여인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무들은 쪼개져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그 더미 가운데 첨탑에 있던 종이 옆으로 쓰러진 채 바닥에 놓여 있습니다. 

여든 살 여인 소피아는 몸을 굽혀 마디가 굵은 손으로 종의 추를 잡고는 팔을 흔들어 종을 울렸습니다. 

저는 소피아를 제 속에 담고 다닙니다. 

여러분도 그러길 바랍니다. 

당신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든, 어떤 환경에서 살든, 당신의 일은 손으로 추를 잡고 종을 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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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구는 꽤 울림이 있었는데, 지금은 약간 부끄럽다. 

강신주 씨가 자기는 힘이 들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다는데, 그 문구를 읽으면서 좀 찔렸다. 

나한테도 나름대로 꽤 힘들다는 자부심이 있었고, 소피아 이야기 같은 문장을 보면 마음에 확 와닿았는데, 요즘 나는 너무 편해진 것 같다. 

지금의 편안함을 힘으로 바꾸어야 한다. 


브라이언 파머 외 엮음 / 신기섭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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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앵커의 JTBC 뉴스나인 모토는 '한걸음 더 들어간 뉴스'이다. 

그런 뉴스는 필요했고, 현재까지 우리나라 방송뉴스들이 잘 하지 못했던 역할이었다. 

종편의 등장과 지상파 TV 뉴스들의 퇴행을 배경으로 시청률이 지상 목표인 듯 선정성과 피상성이 심해지던 상황에서, 손석희는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 

지상파 뉴스들은 다양한 사안들을 짧은 꼭지로 훑으면서 단편적인 정보만 전달했고, 상당 부분은 사건사고 뉴스와 생활뉴스로 채웠다. 

항상 비슷한 교통사고, 화재, 범죄, 기상, 보이스피싱 등에 대한 뉴스들. 그런 뉴스들도 나름의 정보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뉴스라는 명칭과는 달리 그 새롭지 않음에 허무감이 들기도 했다. 

한편으로 인터넷을 달구었던 이슈들이 지상파 뉴스에선 얼마나 가볍게 처리되고 마는가, 그 풍부하던 맥락들은 어디로 가고 저리도 피상적으로 다루어지는가 한심스럽기도 했다. 

짧은 분량 안에 들어가는 메시지는 방송사의 의도적 편집을 의심할 정도로 신뢰하기 어려운 기준으로 취사선택되어지곤 했다. 

그런 한편 종편들은 어떠한가? 

비용은 적게 들고 기본 시청률을 보장하기 때문인지 패널들을 불러다 대담을 하는 형식의 보도 방송이 많았다. 

노골적인 편파성을 내보이는 조선과 동아는 논외로 치더라도 MBN의 경우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이슈들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패널들을 불러 토론을 시키는 방식으로 지상파 뉴스들이 느끼게 하는 피상성은 어느 정도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MBN이 중요하게 다루었던 이슈는 전두환, 이석기, 채동욱 등으로 대변되는, 흥미롭지만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의 관점에선 간접적이고 피상적인 이슈들이었고, 그 이슈들을 다루는 방식도 패널들의 개인 의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이었다. 

공통적으로 지상파든 종편이든 뉴스를 흥미거리의 소재로 다룰 뿐 사회에 미치는 영향의 중요도라는 관점에서 이슈를 선별하고 집중하고 깊이를 더하려는 노력은 부족해 보였다. 

이런 문제들이 손석희의 시도 한 방으로 해결되리라고 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본 그의 시도는 신선하고 기대를 갖게 한다. 

우선 다루는 꼭지들이 굵직굵직하고 나열에 그치지 않으며, 시청자들의 관심에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이슈들을 발굴하여 모토에서 이야기했듯 '한 발자국' 더 들어가려는 모습을 보인다. 오늘의 경우를 예를 들자면, 프란체스코 교황의 동성애자들에의 관용 관련 언급에 대한 보도와 함께 신부님을 모셔 그에 대한 우리나라 천주교의 입장을 들어보는 것은 다른 방송뉴스과는 다르게 이슈의 중요성을 판단한다는 느낌이 들어 신선했다. 이어도에 대한 중국의 침범 문제를 이슈로 제기한 것도 좋았다. 

객관성과 신뢰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손석희의 브랜드와 맞물려 돋보이고, 각 현장에 기자들을 파견해 최대한 생생한 정보를 전달하려는 모습이나 북한 주민과의 통화 녹음 같은 특종 성격의 꼭지, 실시간 여론조사 등 차별성을 더하려는 모습들이, 이번에 손석희 씨가 칼을 갈았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손석희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얼마 안되는 긍정적 브랜드 중 하나이다. 

언론계에서 일을 하다 보면 피가 끓고 튀고 싶은 욕구도 수시로 있었을텐데, 그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힘든 절제와 자기관리로 공정성, 신뢰성, 실력이라는 브랜드를 쌓아 왔다. 

그리고 이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자리에서 특정 회사가 아니라 방송언론계 전체의 혁신이 될 수도 있는 시도를 하고 있다. 

내공이란 꾸준하게 쌓아 올려야 하는 것이지만, 승부처는 많지 않은 법이다. 그로서는 지금이 승부처라 할 것이다. 

그의 승부수가 성공하여 개인으로서도 브랜드를 한 단계 쌓아 올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고, 그의 시도가 언론에 있어서 좋은 변화가 시작되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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