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이 행복을 유지하는 편이 불행한 사람이 불행을 벗어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습관을 고치기 어려운 것이나, 가치관의 근본적인 부분이 잘 바뀌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청소년기부터 행복한 사람의 평생은 불행한 청소년기를 보내는 사람의 평생과 시작 부분부터 큰 차이를 갖는다.
어른들은 무슨 배짱으로 유연한 젊은 정신들을 분재를 만들듯이 비틀어대는 것일까?
예를 들어, 자신과 남을 비교하며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갖는 것에는 심한 부작용이 있다. 나는 그런 감정에 심하게 사로잡힌 적도 있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왔던 시기도 있기 때문에 그 영향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
비교하고 상대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일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한가지 기준의 절대화, 전국적인 규모의 상대평가, 그에 따른 처벌과 보상 따위가 그런 경향을 어린 마음들 속에 강화시켜 평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까?
일진이나 왕따도 그들에게 몰아넣은 스트레스가 폭발하는 한 방식일 것이다. 자신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고 앞으로의 미래도 그럴 것이라고 예감되는 상황, 어른이라면 이런저런 탈출구를 찾을 수 있겠지만 경험은 너무 적고 미래는 한없이 커보이는 아이들의 빗나감을 그들의 탓이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이 다 잘 나오면 선생님들은 출제하는 시험 문제 수준을 올린다고 한다. 평가가 변별력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올린 학업능력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될까? 우리가 배운 것들 중 정말 삶과 직업에 도움이 된 것들이 무엇인가?
지식이 아니라 인성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그 인성이라는 것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윤리교육 시간을 늘리면 되는 것일까? 인성이라는 것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무엇을 가르칠까 이전에, 인생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꽃피는 시기이기도 한 청소년기에 어떤 경험의 기회들을 제공해줄 것인가, 어떻게 그 시기가 평생 힘이 될 행복한 기억으로 남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불행한 사회가 불행한 교육을 낳고 불행한 교육이 불행한 사회를 낳으니,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다. 타협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하면서 끌고 나가는 수밖에.
(아이가 있으면서 이런 글 쓰면 좀 있어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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