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앵커의 JTBC 뉴스나인 모토는 '한걸음 더 들어간 뉴스'이다. 

그런 뉴스는 필요했고, 현재까지 우리나라 방송뉴스들이 잘 하지 못했던 역할이었다. 

종편의 등장과 지상파 TV 뉴스들의 퇴행을 배경으로 시청률이 지상 목표인 듯 선정성과 피상성이 심해지던 상황에서, 손석희는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 

지상파 뉴스들은 다양한 사안들을 짧은 꼭지로 훑으면서 단편적인 정보만 전달했고, 상당 부분은 사건사고 뉴스와 생활뉴스로 채웠다. 

항상 비슷한 교통사고, 화재, 범죄, 기상, 보이스피싱 등에 대한 뉴스들. 그런 뉴스들도 나름의 정보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뉴스라는 명칭과는 달리 그 새롭지 않음에 허무감이 들기도 했다. 

한편으로 인터넷을 달구었던 이슈들이 지상파 뉴스에선 얼마나 가볍게 처리되고 마는가, 그 풍부하던 맥락들은 어디로 가고 저리도 피상적으로 다루어지는가 한심스럽기도 했다. 

짧은 분량 안에 들어가는 메시지는 방송사의 의도적 편집을 의심할 정도로 신뢰하기 어려운 기준으로 취사선택되어지곤 했다. 

그런 한편 종편들은 어떠한가? 

비용은 적게 들고 기본 시청률을 보장하기 때문인지 패널들을 불러다 대담을 하는 형식의 보도 방송이 많았다. 

노골적인 편파성을 내보이는 조선과 동아는 논외로 치더라도 MBN의 경우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이슈들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패널들을 불러 토론을 시키는 방식으로 지상파 뉴스들이 느끼게 하는 피상성은 어느 정도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MBN이 중요하게 다루었던 이슈는 전두환, 이석기, 채동욱 등으로 대변되는, 흥미롭지만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의 관점에선 간접적이고 피상적인 이슈들이었고, 그 이슈들을 다루는 방식도 패널들의 개인 의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이었다. 

공통적으로 지상파든 종편이든 뉴스를 흥미거리의 소재로 다룰 뿐 사회에 미치는 영향의 중요도라는 관점에서 이슈를 선별하고 집중하고 깊이를 더하려는 노력은 부족해 보였다. 

이런 문제들이 손석희의 시도 한 방으로 해결되리라고 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본 그의 시도는 신선하고 기대를 갖게 한다. 

우선 다루는 꼭지들이 굵직굵직하고 나열에 그치지 않으며, 시청자들의 관심에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이슈들을 발굴하여 모토에서 이야기했듯 '한 발자국' 더 들어가려는 모습을 보인다. 오늘의 경우를 예를 들자면, 프란체스코 교황의 동성애자들에의 관용 관련 언급에 대한 보도와 함께 신부님을 모셔 그에 대한 우리나라 천주교의 입장을 들어보는 것은 다른 방송뉴스과는 다르게 이슈의 중요성을 판단한다는 느낌이 들어 신선했다. 이어도에 대한 중국의 침범 문제를 이슈로 제기한 것도 좋았다. 

객관성과 신뢰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손석희의 브랜드와 맞물려 돋보이고, 각 현장에 기자들을 파견해 최대한 생생한 정보를 전달하려는 모습이나 북한 주민과의 통화 녹음 같은 특종 성격의 꼭지, 실시간 여론조사 등 차별성을 더하려는 모습들이, 이번에 손석희 씨가 칼을 갈았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손석희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얼마 안되는 긍정적 브랜드 중 하나이다. 

언론계에서 일을 하다 보면 피가 끓고 튀고 싶은 욕구도 수시로 있었을텐데, 그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힘든 절제와 자기관리로 공정성, 신뢰성, 실력이라는 브랜드를 쌓아 왔다. 

그리고 이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자리에서 특정 회사가 아니라 방송언론계 전체의 혁신이 될 수도 있는 시도를 하고 있다. 

내공이란 꾸준하게 쌓아 올려야 하는 것이지만, 승부처는 많지 않은 법이다. 그로서는 지금이 승부처라 할 것이다. 

그의 승부수가 성공하여 개인으로서도 브랜드를 한 단계 쌓아 올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고, 그의 시도가 언론에 있어서 좋은 변화가 시작되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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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의원이 휴가 때 읽을 만한 책으로 추천한 3권 중 하나는 웹툰 미생이고 다른 하나는 조셉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이다. 

조셉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는 지금 내가 한창 읽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단순히 읽으면 되는 여러 책 중의 한 권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정치가 지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는 이 책에서 정치와 경제에 관련된 중요한 이슈들을 포괄하면서 명쾌한 진단과 지향들을 내놓고 있다. 

예를 들어 2007년 경제위기는 금융 분야의 규제 완화와 무분별한 자유가 원인이고, 정보 비대칭성을 비롯한 여러 이유들로 시장은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파는 시장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해야 하고 정부는 시장보다 비효율적이라는 믿음을 퍼트리지만, 이는 여러 연구 결과와 어긋날 뿐더러 현실에서도 근거를 찾지 못한다. 

우리가 맞서야 하는 것은 경제를 왜곡하여 상위 1%에게만 부와 권력을 집중시키려는 자본의 힘이며, 그 힘이 정치와 언론까지 왜곡하려는 시도이다. 

이에 반해, 오늘 5분 정도 시간을 내어 읽어 본 정몽준 의원이 쓴 소책자는 우리의 주적이 포풀리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07년 경제위기의 원인은 모든 국민들이 주택을 보유하게 하자는 부시 행정부의 이상적인 포풀리즘 때문이었고 금융 시장에 대한 규제가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일반적 통념은 틀렸다는 것이다. 소책자의 한계는 있겠지만 수많은 각주로 주장의 근거를 대고 있는 스티글리츠의 책과 달리 정몽준 의원의 주장에는 이렇다할 근거는 보이지 않고 주장과 사례만 있을 뿐이다. 

나는 이 책이 매우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 포괄적이고 일관된 주장들을 펴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요약해서 블로그에 옮길 계획을 갖고 있다. 

그리고 안철수 의원에 대해서도 몇 마디.. 

내가 쓴 다른 글에서 보면 알겠지만, 나는 안철수 의원의 그 동안의 행동들 중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 몇 가지 있었고 마음이 멀어진 상태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들을 정치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누군가 해 주었으면 하던 차에 이 책을 추천했다는 것이 그에 대한 기대를 하게 만든다. 

차이를 줄이는 정치를 하겠다는 말이나, 1호 발의 법안으로 차명계좌 처벌법을 만들겠다는 움직임도 괜찮은 것 같다.  

적전분열 일으키는 민주당 요즘 모습 보면 그쪽도 별 기대할 건 없는데. 

하지만, 정치적 지향 못지 않게, 정치적 의사결정에서 보여지는 당당함, 정의에 대한 분명한 의지의 표현,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능력도 중요할 것이다. 

그가 어떤 사람들과 함께 힘을 모아가느냐를 지켜 보려고 한다.  

그가 상식 대 비상식의 지루한 공방의 틀을 깨고 정말 중요한 문제들에 있어서 생산적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전선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불평등의 대가

저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13-05-30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왜 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갈수록 가난해지는...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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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의 핵심적인 딜레마는 투표의 역설로 대변될 수 있다. 
투표의 역설이란, 투표란 행위가 경제학의 기본 원리와 모순된다는 것이다. 
투표를 하는 행위는 개인에게 아무 효용을 가져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의 한 표로 투표의 결과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표 행위에는 시간과 노력 등 여러 비용이 따른다. 
이 역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풀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투표 행위에는 비용만 따르지 않고 행위 자체의 만족감도 있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다는 잇점도 있다. 또는 비용과 효용으로 따지는 경제학적 시각 외에 다른 접근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투표의 역설을 해결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투표의 역설을 더 확대하자면,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정치의 기본적 모순으로 이어진다. 
민주주의는 사회 구성원들의 평등한 정치적 권리를 전제한다. 구성원들은 스스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들에 참여할 권리가 있고,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국민들은 소수의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 권한을 일임한 채 그들이 결정한 틀 안에서 살아간다. 
물론 국민들은 여론을 통해, 선거를 통해 그 권력자들의 의사결정을 간접적으로 통제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자기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의 자세한 내용에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의사결정의 내용과 그 근거와 효과를 이해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한 명의 국민으로서 의사결정에 미칠 수 있는 힘은 매우 제한되어 있어서 들어간 비용만큼의 효과를 얻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이 정치에 대해 갖는 관심은, 거의 생각을 하지 않아도 판단할 수 있는 명명백백한 사안들, 스캔들과 같이 흥미를 끄는 이슈들에 제한되고 만다. 나머지 문제들에 대해서는 정치인들과 언론인들, 기업인들, 학자들, 권력자들이 형성한 관념에 따라 기계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거나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정치적 의사결정이 특정 집단에만 유리하고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불리하지 않게, 그리고 정의에 부합하게 내려지기 위해서는,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 다수의 국민을 대리하여 공정하게 권력을 사용해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이 소수의 엘리트 집단을 믿을 수 있는가?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집단들이 국민들의 여론 앞에서 투명하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인가? 관료들과 입법자들은 공공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그들의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가? 경제를 지배하는 기업인과 금융가들이 정치와 언론, 학계의 엘리트들에 미치는 영향력은 공정한 방식으로 행사되고 있는가? 
우리는 사람들의 선의에 의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대다수 사람들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나 지식을 취사 선택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파멸되더라도 나만 돈을 벌면 그만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온실효과에 대한 과학적 객관적 증거들을 무시한 채 온실효과가 화석에너지 소비와 거의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자세히 살펴 보기 전까지는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는 주장을 믿어 버리는 자본가나 정치가들은 흔하다. 
누군가 나의 이익을 해치는 정책이 정의라고 주장하는가? 그 정책과 상충되는 이론을 지원하면 된다. 그러면,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전문가의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한 기술적인 문제가 되고 만다. 국민들은 물러나 계시라, 이건 우리 엘리트들이 알아서 처리하겠소. 
그렇다면, 기업의 광고를 받는 언론사, 경기의 호황을 위해 기업인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정당, 기업의 발주를 받아 연구를 하고 학생들을 취업시켜야 하는 대학 들 중에서 우리는 누구를 믿어야 하나? 
결국 삼성에게 좋은 것은 대한민국에도 좋은 것이 된다는 사고방식이 사회의 지배 이념이 된다.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기업, 경제를 성장시키는 기업, 글로벌 시장에서 국위를 선양시키는 우리 자랑스러운 기업들을 잘 성장시키는 것이 국가에도 좋고 전 국민들에게도 좋은 것이다. 무엇이 나쁘겠는가. 
정치란, 좋은 삶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치는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서 어떤 것이 필요한가의 문제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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