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가 1장에서는 실천적 지침을 따로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고 했지만, 1장에서 표현된 내용들만으로도 노자적인 태도, 사고방식, 습관 같은 것들을 찾아 볼 수 있다. 

도가도 비상도 라고 하는 말은, 어떤 것을 옳다고 말하더라도 그것은 제한이 있는 옳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들이 말하고 주장하는 모습들을 보면, 자신의 절대적인 옮음에 집착하는 듯한 태도가 하면 자신의 옳음에 스스로 제한을 두는 태도가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 문재인 전대표가 더민주당의 야권통합제의를 거절한 국민의당에 대해 평가한 인터뷰의 한 대목이다. 

"일단 평가부터 먼저 하자면 국민의당은 이미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국민의당이 새정치 한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공천받기 위한 정당이 됐죠. 애당초 성공할 수 없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방법으로 새정치를 어떻게 하나. 당원구조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정당문화를 만들어야 가능한 건데 선거시기에 공천 걱정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정당을 만들었다. 처음부터 성공할 수 없는 방식이라고 냉정하게 말하고 싶다. 그게 현실속에서 확인되고 있는 거다. 저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에요...."

메시지를 떠나서, 생각한다, 생각하지 않는다, 말하고 싶다, 저는 이해할 수 없는... 이런 표현들이 눈에 띈다. 

물론 이런 표현들은 다른 정치인도 많이 사용하고, 위의 예에서 문재인 전대표가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문재인 전대표의 경우 다른 정치인과 비교를 해 보자면, 내 말이 옳고 당신이 틀렸다, 보다, 나는 당신과 다르게 생각한다, 라는 인식이 더 강하게 나타나 보일 때가 많다. (문재인 전대표 인터뷰 전문)

다른 예로 고대 아테네의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가 전투에서 쓰러진 시민들을 위해 한 추도사의 첫 부분을 보자. 

"오늘까지 이 연단에 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몰자들에게 조사를 바치는 것을 옳다고 보고, 이 연설의 관례를 법으로 정한 인물을 칭찬해왔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행동으로 나타난 그 명예는 행동으로 표창되면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공중의 손으로 준비된 이 매장행사를 여러분이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과 같이, 다수인의 덕행이 한 개인에게 맡겨져 그 사람의 뛰어나거나 혹은 서툰 연설에 의해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중략) 그러나 옛 사람들이 이런 관습을 좋은 것으로 인정한 이상, 나도 그법에 따라 되도록이면 여러분의 생각과 희망을 표현하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

이 연설에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주장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만, 그 주장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는 견해 중의 하나인 것처럼 소개가 되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처칠의 연설과 같은 단호한 스타일을 더 선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엔 항상 단언하는 듯한 표현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진다. 

유보적인 표현을 하는 것은 "그래, 내가 아닐 수도 있다고 했잖아", 라는 여지를 남기는 것이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사실, 일종의 비판을 두려워 하는 비겁함과 책임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단언적인 표현을 하지 못하는 원인인 경우도 많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북돋고 생각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들을 끌어당기기 위해 굳이 넣을 필요가 없는 유보적 표현들을 문장에서 생략하는 것이 더 나을 때도 많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데 내 생각은 이래, 라는 식의 힘없는 주장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부족하다. 

하지만, 힘도 열정도 없이 단견을 가진 사람들보다 자신이 한 단계 위에 있다는 것을 보이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지혜로운 사람'들과, 세상에 자기들만 옳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다 천하의 악인이거나 어리석은 사람처럼 매도하는 목소리 큰 사람들 틈에서, 신념에 충만하지만 그 신념의 한계에 대한 인식을 함께 드러내 보이는 사람들의 낮지만 확고한 음성이 들릴 때가 있다. 

나는 그것이 조화이며, 품격이라고 여긴다. 

우리는 진리나 올바름을 소유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신이 붙잡은 도의 단면을 표현하는 데 성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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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까지 이야기한 내용을 갖고 노자 도덕경 1장을 다시 정리해 보려고 한다. 
1장은 윤리적인 판단이나 지침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다만, 노자 사상의 전제와 기본 태도를 보여 주는 중요한 부분이라, 한 번 더 짚어 보고자 한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모
고상무욕 이관기묘 상유욕 이관기교
차양자동출이이명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도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고,
이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항상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이 천지의 시작이고, 이름이 있는 것이 만물의 어머니다. 
그러므로, 항상 욕심이 없는 것으로 그 묘함을 보고,
항상 욕심이 있는 것으로 그 요함(경계를 이룸)을 본다. 
이 두 가지는 같은 곳에서 나와 이름을 달리하니, 
함께 일컬어 어두운 것이라고 한다. 
어둡고 또 어두우니, 수많은 묘한 것들의 문이 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첫 줄이다. 
노자는 도, 즉 진짜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 도는 천지의 시작이며, 모든 것을 아우르고,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일어나는 삼라만상의 변화를 주재하는 원리이다. 
이 도에는 자연 세상의 법칙도 있을 것이고,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움직이고 사회가 변화하고 발전해 나가는 원리도 있을 것이다. 
소를 잡는 백정이 몸에 익힌 도도 있을 것이고, 서생이 암자에 앉아 공부하며 깨우치는 수신의 도도 있을 것이며, 군주와 책사가 실천하며 깨달아가는 천하의 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도이든 간에, 사람이 생각으로 이해하고 말로 표현한 도는 실재의 도와 격차가 있다. 
언어는 사물들을 서로 구분(경계)짓는 데 사용되는 것이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믿든, 무엇을 생각하든, 무엇을 주장하든, 어떤 평가와 판단을 내리든, 그것은 실재의 도와 차이를 갖는 한정적인 진리이다.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이 언어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관기묘, 즉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 도의 모습, 세상의 미묘한 부분들을 얼핏 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이런 방식으로 노자는 두 가지 입장과 차이를 둔다. 
그 중 하나는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상대주의적 입장이다. 극단적인 상대주의는 어떤 것을 믿든, 어떻게 살든 다 마찬가지이고, 개인의 취향과 선택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노자는 도가 존재한다고 말하고, 스스로 자유를 지녔다고 생각하는 인간 역시 도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이야기한다. 
다른 한편으로 노자는, 사람의 인식과 언어는 언제나 실재의 도를 온전하게 붙잡을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은 명분이나 진리로 여기는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다. 

아직 노자는 실천적인 지침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노자가 1장에서 제시한 전제 위에서 권고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는 더 뒤의 내용을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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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상무욕 이관기묘 상유욕 이관기요 

고로, 항상 욕심이 없음으로 그 묘함을 보고, 항상 욕심을 갖고서 그 요함을 본다. 

여기에서 어려운 한자는 요 자이다. 어디서는 교 자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요 라는 한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어 어느 뜻이 이 맥락에 맞는지 알기 어렵다. 
순찰하다, 구하다(바라다), 가장자리, 변방, 샛길, 훔치다 이런 뜻들이 있다. 
아마 무단침입이 일어나기 쉬운 곳을 순찰한다는 의미에서, 가장자리, 변방, 샛길, 구하다, 훔치다 이런 여러 뜻이 파생이 된 것 같다. 
그렇다면, 묘하다는 단어와 댓구를 생각해 볼 때, 요라는 것은 가장자리 혹은 경계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혹은 순찰을 하는 사람이 맡은 구역을 다니면서 살피듯이 무엇인가를 보는 태도라고 볼 수도 있겠다. 

다시 말하면, 욕심이 없는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볼 때는 그 묘함을 본다, 
욕심을 갖고 무엇인가를 볼 때는 보고자 하는 것을 본다, 서로 경계를 이루는 (구별되는) 지점을 본다, 
이런 정도의 해석이면 정확하지는 않아도 대충 노자의 취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묘함을 본다는 것은, 말로 묘사하기 힘든 세밀한 부분들을 본다는 뜻일 것이다. 
요함을 본다는 것은 해석에 따라 뉘앙스는 달라지겠지만, 순찰하는 사람이 뭔가 이상한 점들을 찾아내듯이 관심 있는 부분을 보게 된다, 
또는 사물들의 가장자리, 즉 사물들이 다른 사물들과 분별되는 지점들을 위주로 보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예를 들어, 앞에서 이야기한 비유를 계속 사용해 보자면, 
사과를 볼 때는 눈 앞에 있는 대상을 사과라는 이름과 무관하게 볼 수도 있고, 사과라는 개념 틀 안에서 볼 수도 있다. 
전자는 보고 있는 사과를 눈에 보이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하는, 또는 남들이 보지 못한 어떤 자기만의 독특한 인상을 찾아 내고자 하는 화가의 자세라고 하겠고, 
후자는 일상적인 태도, 예를 들어 냉장고에서 먹기 위해 사과를 꺼낸다거나 할 때의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비유를 사용하자면, 사랑에 빠진 연인이 서로를 바라볼 때는 상대방의 묘함을 본다. 
하지만 클럽에서 만난 상대를 어떻게든 모텔로 데려가고자 하는 남자가 상대를 바라볼 때는 자신의 욕구에 도움이 되는 신호들만 파악한다. 
한편, 장군이 전투를 위해 부하들을 배치할 때는 각 병사들의 인간적인 개성들은 무시되고 자신의 목적에 도움이 되는 부분들만 개념으로 묶여 이용된다. 
즉, 전투 경험이 많고 사기가 높은 1중대 100명은 전방에 배치, 최근에 힘든 전투를 겪은 2중대 80명은 후방에 배치, 이런 식이다. 

이 구분이 명확한 것은 아니다. 
화가가 사과를 그리면서 그 사과라는 이름을 잊어버리는 것은 아니고, 어떤 목적에 대상을 이용하면서도 그 목적의 달성에 관계가 없는 대상의 특질들을 전혀 인식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자신의 목적이나 욕구에 중점을 두고 그에 필요한 도구로서 대상을 보는 태도와 대상에 대한 순수한 인식에 중점을 두는 태도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갖고 있는 개념의 틀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것과 그런 개념이 잡아내지 못하는 대상의 미묘한 특징들을 인식하는 것 사이에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진화론의 방식으로 생각해 보자면, 앞서도 말했지만 개념화의 능력은 우리의 유전자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진화해 온 결과로 탄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자가 진화론을 알지는 못했겠지만, 개념화의 능력이 인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알았을 것이다. 
목적이나 욕구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사물을 조작하기에 편하도록 개념화한다. 
개념화를 통해 무수한 사물을 분류하고 개념 간의 관계를 파악하며 그로부터 미래를 예측하고 필요한 행동을 결정한다. 
무수한 사물의 특질 중에서 욕구 달성에 필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지워 이름으로 묶음으로써, 인식과 결정의 과정을 경제적으로 수행한다. 

정리하자면, 유욕과 무욕은 대상을 대하는 두 가지 방식의 태도이다. 
우리는 유욕으로서 개념으로만 인식하기 어려운 사물들의 묘함을 볼 수 있고, 
유욕으로서 사물들이 서로 구분되는 지점들에 주목하여, 경제적으로 정교한 인식을 이루어낸다. 

유욕과 무욕 중 어느 것이 더 낫고 못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점점 바빠지고 합리성이 강요되는 현대 사회에서, 무욕의 태도를 가질 기회란 더 드물어지는 듯 하다. 
우리는 거의 항상 목적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여가시간 마저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을 느낀다. 
하지만 정상을 정복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산을 오르다 문득 주변의 경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가 있는 것처럼,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인데 이런 말을 해 줘서 이렇게 기분을 좋게 해 주어야겠다 는 식의 작업에만 몰두하다가 문득 지금까지 봐 오지 못했던 상대방의 깊이를 느끼는 때가 있는 것처럼, 
무욕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문득 상기시켜 주곤 한다. 

*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이 많은 사람은 대상을 볼 때 주로 시스템적인 측면, 즉 내부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고 어떻게 조작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를 파악하는 데 집중을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러한 성향이 적은 대신 상대방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한다.
유욕과 무욕의 방식은 테스토스테론의 많고 적음과 어느 정도 대응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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