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가명 비상명은 좀 더 쉽게 풀이할 수 있을 듯 하다.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들은 항상 그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울 수 없는 것들이다,
또는, 이름을 붙인 대상은 그 이름에 맞는 존재로 영원불변하게 유지되지 않는다,
이런 정도의 풀이면 되지 않을까 한다.
이름, 즉 언어의 한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이 지적되어 온 사항이다.
그 한계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어떤 사람을 선한 사람, 또는 악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철수가 선한 사람이라고 하는 명제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부정확하다.
우선, 철수는 지금은 선한 사람이지만 앞으로는 악한 사람으로 바뀔 수가 있다.
또한 아침에는 선했다가, 저녁에는 악했다가, 다음날 점심 때는 다시 선해질 수도 있다.
출근하면서 가족과 인사할 때는 선하고 상냥하지만, 회사에서 부하직원을 대할 때는 악할 수 있다.
그리고, 선한 것이 무엇인지 악한 것이 무엇인지 사람마다 정의가 다를 수 있다.
또는 선하다는 말, 악하다는 말에는 각각 수많은 뜻이 있어서 그때 그때 다른 뜻으로 쓰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철수는 참 선해, 라고 말한다면,
말한 사람은 철수가 항상 자기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앞세운다는 뜻으로 이야기했지만 듣는 사람은 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친절하다는 뜻으로 이해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 사람은 나중에 철수를 만났을 때 그가 독불장군식으로 부하직원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놀랄 지 모른다.
또한 이름은 이름을 붙인 대상의 모든 면을 나타내지 못한다.
이름이란, 개개의 사물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속성들 중에서 다른 사물들과 갖고 있는 공통된 속성을 뽑아 내어 동일하게 취급하기 위한 도구이다.
우리는 사과가 아닌 것과 사과인 것을 구분할 수 있으면 사과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의 이해가 있으면 예를 들어 사과 다섯 개만 안방으로 가져오라는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기엔 충분하다.
하지만 사과라는 이름은 같은 이름을 가지는 사물들 간의 세부적인 차이를 구분해내지 못한다.
사과라는 말을 들으면 붉은 색의 둥그스름하고 꼭지가 달려 있는 과일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실제의 사과 하나하나는 그 색이나 모양이나 맛이 모두 다 다르다.
사과라는 이름은 이런 다양함을 다 담지 못하고 묶어서 부르는 데 쓰일 뿐이다.
또한 언어는 직접적인 체험과 같지 못하다.
우리가 고통이나 불행, 기쁨, 사랑, 이런 단어들의 의미를 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지금 이 순간 그런 체험을 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 단어들의 의미를 충분히 알고 있다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붙이면 우리는 그 대상을 이해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 사람이 누구지? 그 사람은 철수야. 그 사람은 선한 사람이야. 그 사람은 명문대 출신이야. 그 사람은 부자야. 그 사람은 엔지니어야.
이름을 붙이는 것, 언어를 통해 대상을 표현하는 것은 대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거기에는 앞에서 이야기한 여러 가지 한계가 있다.
언어는 대상이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포착하지 못하고 대상이 불변하는 어떤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고,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하며,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의 일부만을 표현할 수 있고,
직접적인 체험을 불완전하게 전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과 이름이 붙여진 대상 사이에는 항상 간격이 존재하고,
이름의 의미에 대한 우리의 이해 역시 항상 불완전하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
사랑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사랑을 표현하는 여러 언어들의 도움을 받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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