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1장에 무욕이관기묘 라고 하는 구절이 있다.
무욕은 욕심이 없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언어에 사로잡히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태도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앞에서 나는 사과를 그리는 화가처럼 몇 가지 예를 들긴 했지만, 아래 글을 읽어 보니 역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는 비슷한 생각이라도 훨씬 재미있게 표현하는구나 싶다.
노자에 관련해서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보게 된 글인데 원문에는 알랭 드 보통의 글 뿐 아니라 노자에 대한 글쓴이의 생각도 담겨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보시기 바란다.
원본 링크 : https://www.facebook.com/faustcollege/posts/57167069288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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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렝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중에서
언어는 그 지속성으로 우리의 우유부단함에 아첨한다.
세상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데, 언어 덕분에 우리는 지속과 고정이라는 착각속에 숨을 수 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
"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다.
모든 것이 흘러가버리는 것은 불가피한 일임을 지적하고 있지만, 강이라는 단어가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같은 강물에 발을 담근 것처럼 착각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나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이다.
그러나 그 말이 나의 감정들의 유동성과 변덕스러움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을 전달해줄까?
그 말 속에 이 사랑과 얽혀 있는 그 모든 배신,권태,짜증,무관심이 들어설 공간이 있을까?
어떤 사건이 이야기로 바뀌는 순간,사건은 추상화된 의미와 저자의 의도라는 미명하에 그 다양성을 상실한다.
클로이와 나는 상당 기간에 걸쳐서 사랑했고 그 시간 동안 나의 감정은 감정적인 계단을 워낙 광범위하게 가로질렀다.
그러나 시간에 쫓기고 단순화에 대한 욕구가 간절하기 때문에 우리는 생략에 의해서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기억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순히 사랑했다는 말은 그 사건들을 잔인하게 단축해버리는 것이다.
함께 보낸 주말을 단 한 단어 "유쾌했다'는 말로 기억할 수 있고 질서와 정체성을 만들어냈으니,언어가 위선임을 용서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가끔은 말 밑의 흐름,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는 강 밑에 흐르는 물과 마주치게 된다.
나는 클로이를 사랑했다.
얼마나 쉽게 들리는가?
마치 나는 사과를 좋아한다거나 프루스트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현실은 얼마나 더 복잡했던가?
한 가지를 말하면 곧 다른 한 가지를 놓치게 된다.
모든 주장은 수많은 반박을 억압했다는 상징이다.
철학자들이 전통적으로 이성에 따른 삶을 옹호하고 이성의 이름으로 욕망에 의한 삶을 비난해왔다면,그것은 이성이 지속성의 기초이기 때문이고,이성에는 시간으로 제한된 범위가 없기 때문이고,유통기한이 없기 때문이다.
배신의 전형적인 시나리오에서 한 사람은 상대방에게 묻는다.
"어떻게 나를 사랑한다고 해놓고 X에게 빠져서 나를 버릴 수 있니?" 그러나 시간을 고려한다면 배신과 사랑 사이엔 모순이 없다.
(중략)
클로이의 생일 카드를 쓰는 과정에서 갑자기 내 펜은 종이 위에 정지하고 말았다.
그녀에게 한번도 사랑한다고 말 한 적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 관계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지만,그럼에도 그 핵심은 어쩐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언급할 가치가 없어서일 수도 있고,너무 의미가 깊어서 아직 정리할 시간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고백의 어려움은 일반적인 의사소통의 어려움과는 수준이 다르다.
우리 둘 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우리 각자의 내부에서 완전히 다른 것을 의미할 수도 있었다.
사랑의 말을 보낸다는 것은 불완전한 송신기로 암호화된 메시지를 타진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공통된 것으로 여겨지는 언어로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때도 그 말들이 서로 다른 원천에 뿌리를 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뿐이다.
우리는 같은 침대에서 같은 책을 읽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가면 그 책들이 서로 다른 대목에서 감동을 주었으며,결국 우리 각각에게 다른 책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한줄의 사랑의 메시지에서도 똑 같은 차이가 발생하지 않을까?
내 마음 → ㅅ ㅏ ㄹ ㅏ ㅇ → 그녀의 마음
클로이와의 저녁 식사에서 나는 나의 클로이에 대한 마음을 'ㅅ ㅏ ㄹ ㅏ ㅇ'이라는 수송 수단에 태워 보내려 했지만 내키지가 않았다.
식탁에서 나는 우연히 마시멜로 접시를 보았다.
의미론적 관점에선 설명할 수 없었지만 나는 클로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시멜로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마시멜로가 어쨌길래 그것이 나의 클로이에 대한 감정과 갑자기 일치하게 되었는지 나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남용되고 닳아버린 사랑이라는 말보다 그 말이 나의 마음의 본질을 정확히 포착하는 것 같았다.
더 불가해한 일이지만 내가 클로의 손을 잡고 눈을 바라보며 '나는 너를 마시멜로한다'라고 말하자 그녀는 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것이 자기가 평생 들어본 가장 달콤한 말이라고 대답했다.
그 때부터 나와 클로이와의 사랑은 그저 단순한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입에서 맛있게 녹는,지름 몇 밀리미터의 달콤하고 말캉말캉한 물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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