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제까지 이야기한 내용을 갖고 노자 도덕경 1장을 다시 정리해 보려고 한다. 
1장은 윤리적인 판단이나 지침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다만, 노자 사상의 전제와 기본 태도를 보여 주는 중요한 부분이라, 한 번 더 짚어 보고자 한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모
고상무욕 이관기묘 상유욕 이관기교
차양자동출이이명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도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고,
이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항상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이 천지의 시작이고, 이름이 있는 것이 만물의 어머니다. 
그러므로, 항상 욕심이 없는 것으로 그 묘함을 보고,
항상 욕심이 있는 것으로 그 요함(경계를 이룸)을 본다. 
이 두 가지는 같은 곳에서 나와 이름을 달리하니, 
함께 일컬어 어두운 것이라고 한다. 
어둡고 또 어두우니, 수많은 묘한 것들의 문이 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첫 줄이다. 
노자는 도, 즉 진짜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 도는 천지의 시작이며, 모든 것을 아우르고,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일어나는 삼라만상의 변화를 주재하는 원리이다. 
이 도에는 자연 세상의 법칙도 있을 것이고,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움직이고 사회가 변화하고 발전해 나가는 원리도 있을 것이다. 
소를 잡는 백정이 몸에 익힌 도도 있을 것이고, 서생이 암자에 앉아 공부하며 깨우치는 수신의 도도 있을 것이며, 군주와 책사가 실천하며 깨달아가는 천하의 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도이든 간에, 사람이 생각으로 이해하고 말로 표현한 도는 실재의 도와 격차가 있다. 
언어는 사물들을 서로 구분(경계)짓는 데 사용되는 것이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믿든, 무엇을 생각하든, 무엇을 주장하든, 어떤 평가와 판단을 내리든, 그것은 실재의 도와 차이를 갖는 한정적인 진리이다.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이 언어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관기묘, 즉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 도의 모습, 세상의 미묘한 부분들을 얼핏 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이런 방식으로 노자는 두 가지 입장과 차이를 둔다. 
그 중 하나는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상대주의적 입장이다. 극단적인 상대주의는 어떤 것을 믿든, 어떻게 살든 다 마찬가지이고, 개인의 취향과 선택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노자는 도가 존재한다고 말하고, 스스로 자유를 지녔다고 생각하는 인간 역시 도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이야기한다. 
다른 한편으로 노자는, 사람의 인식과 언어는 언제나 실재의 도를 온전하게 붙잡을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은 명분이나 진리로 여기는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다. 

아직 노자는 실천적인 지침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노자가 1장에서 제시한 전제 위에서 권고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는 더 뒤의 내용을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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