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도 비상도. 

이 말을 받아들이는 데 첫째 난관은, 과연 정말 진리를 고정된 것으로 붙잡을 수 없는가 하는 것이다. 
이천수백년 전의 노자가 살던 시대에 비하자면 자연과학과 수학은 상상 못 할 만큼의 발전을 했다. 
과학은 변하지 않는 도를 밝혀내고 있지 않은가. 
노자가 말하는 도에 불변의 과학적 진리는 포함되지 않는 것인가.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앞의 글에서 답변을 시도하였다. 
충분하지는 않아 보이나, 내 입장은 이렇다.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고, 그것에 가깝게 다가가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복잡성이 너무 높아 자연과학의 엄밀함을 적용하기 힘든 영역, 그리고 인간의 주관적 체험이 연관된 영역에서는 그러한 절대적 진리를 포착해 내기 힘들다. 
복잡성의 문제는 학문의 발달로 해소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의 경험, 의미, 가치에 관련된 명제들은 말로 표현은 할 수 있어도 불변의 진리를 포착해 낼 수는 없다. 
우리는 붉은 색을 빛의 파장으로 계량화할 수 있지만, 붉다는 것에 대한 체험은 언어나 과학으로부터 그대로 재현되지 않는다. 
도는 세계, 물질의 세계 뿐 아니라 인간의 정신이 포함된 세계가 변화해 가는 궤적이자 그 변화를 주재하는 원리이다. 
앞서 말한 한계들로 인해 도는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우리의 인식으로 정확하게 포착해 낼 수 없다. 

그렇다면 이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노자가 명(이름)의 세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명에는 명의 역할이 있다. 다만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유욕이관기묘 무욕이관기요. 
욕심이 없음으로 묘함을 보고 욕심을 갖고 요함, 즉 사물들의 경계를 본다. 
무욕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있고, 유욕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우리가 욕구를 충족시키고 인식을 고도화해 나가는 데에는 개념과 의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개념적 인식과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에 사로잡힌 인식 만으로는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개념의 틀로 포착되지 않는 섬세한 부분들, 그리고 목적의 달성과 무관한 대상의 모습들이다. 
유욕의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 볼 수 있는 것들이 있고, 무욕의 상태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살아가는 데에는 아마 유욕과 무욕의 상태를 넘나드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노자에서는 무욕 쪽에 중점이 있다. 
유욕의 상태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 온다.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고, 우리가 갖고 있는 개념의 틀로 세상을 본다. 
노자는 다른 방식으로 보는 것,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 환기시켜 준다. 

그럼 노자가 시사하는 바에 따라서 우리는 무엇을 해 볼 수 있을까?
목적을 추구하는 주체의 역할을 멈추어 보는 것. 
내가 추구해 오던 목적들과 상관 없이 한 번 존재해 보는 것. 
항상 머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들을 줄여 보는 것. 
뭔가 도움되는 일을 해야 한다, 무언가 좋은 것을 시간에게서 얻어내야 한다, 더 낫게 변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그냥 지내선 안된다, 이런 생각들의 소음을 지워 보는 것. 
절대적 진리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자신의 인식 틀을 잠시 빠져 나와 새롭게 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러기 위해 대상의 가치를 평가하거나 대상을 개념적으로 파악하려는 성향을 벗어나 보는 것.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상으로 시선을 돌려 보는 것.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존재해 보려고 하는 것. 
그런 방향으로 마음을 다스려 보는 것. 

'있는 그대로'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이 도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는 데 또다른 난관이다. 
인간은 목적, 동기, 충동, 욕구, 믿음, 무의식, 이런 것들이 다 종합된 존재인데 어떤 부분을 의식적으로 배제한 모습이 '있는 그대로' 라고 할 수 있는가?
어떤 욕정에 사로잡혀 성급하게 행동하는 사람, 이성적으로 정한 목적의 달성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사람, 욕망을 줄이고 유유자적 하는 사람 사이에 차별이 있는가. 
이 부분은 내가 잘 모르겠다. 
내 생각엔 상대적인 개념일 것 같다. 
우리가 가진 목적이나 개념적 인식은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즉 무엇을 원하는 순간에는 그것을 반드시 얻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무엇이 어떤 개념으로 인식되면 그 개념이 무엇의 본질인 것처럼 여기게 된다. 
하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는 것도 인식할 수 있다. 
아마도 우리의 목적과 믿음과 욕구들에 대해 충실하면서도 그것을 절대시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절대시하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 가능해지고, 또한 집착과 강박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도가도 비상도.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 안에 있다. 
도 안에서 체험하고 존재하고 변화한다. 
우리가 도를 온전히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역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한계 너머에 다함이 없는 도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 몫 만큼의 주어진 길을 가도록 하자. 

자유롭게, 충실하게, 충만함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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