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과 경찰의 불법 행위에 대하여

검찰의 수사 결과는 국가정보기관의 불법적인 정치 개입과 여론 조작 혐의가 명백함을 보여 준다. 
그 못지 않게, 경찰이 수사 결과를 왜곡하여 국민들에게 공개한 것은 악질적인 행위였다. 
이것은 어느 정치세력을 지지하느냐와 무관하게 부정의한 일이다. 
선거로 정권을 결정하는 사회에서, 선거에 미치는 사건을 왜곡하여 발표한 것이 쿠데타와 무엇이 다른가? 
민주주의는 선거로부터, 여론으로부터 권력이 만들어지는 제도이다. 
그 권력은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에 대해,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일은 쿠데타로 잡은 정권이 엎어진 정권보다 나으냐 못하냐의 문제가 아니다. 
쿠데타가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이다. 
그런데 주류 언론은 이 사안에 비중을 두지 않거나  정치권의 흔한 논쟁 정도로 다룬다. 
지상파 방송 중에서는 SBS 정도가 주요 뉴스로 다루었을 뿐, 나머지 방송은 낮은 비중으로, 그것도 정쟁의 한 부분인 듯이 보도한다. 
국정원에서 불법적으로 정치에 개입했다는 사실과 그것을 밝혀내려는 과정에서 개인적 동기가 얽혔다는 것이 같은 급의 문제인가?
국가정보기관의 불법 행위를 외부에 알린 일을 국기문란행위라고 규정하는 새누리당은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있는가?
언론은 비판 의식을 갖고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국정원과 경찰의 잘못에 대해 분명한 태도로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그 의지를 표현해야 한다. 
그런데 하는 일은, 내부고발자의 동기와 국정원 직원의 소위 인권을 빌미로 한 민주당에 대한 역공,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제기, 
법무장관과 민정수석을 통해 수사팀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는 것 따위이다. 
종편은 패널을 초대해놓고 종북세력 수사가 국정원 본연 임무인데 무슨 문제냐 따위 얘기를 하고 있고, 
사건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왜곡하는 기사들이 올라온다. 
그런 와중에 정권에 대한 신뢰가 생겨나겠는가?
현 정권의 국정원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탄핵까지도 갈 수 있는 일이지만 전 정권에서 일어난 일이다. 
(경찰청장의 소행은 박근혜 캠프와의 관련성 여부에 따라 박대통령의 정당성을 위협할 수까지 있는 사안이지만 선거법 공소시효도 끝났고 검찰도 거기까지는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진정성있는 사과와 재발방지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큰 타격이 되지 않고 오히려 신뢰를 높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같은 태도를 보인다면, 북한 문제 때문에 인기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큰 피해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어느 순간 독이 되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큰 짐이 될 것이다. 
성공하는 정부란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것인데, 마음에 심은 불신의 싹은 당장에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나중에 댓가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정의롭지 않은 자들로 좋은 정부가 운영되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양심과 원칙을 따르려는 모습에는 진정성이 있다고 믿는다. 
걱정되는 것은, 대선 토론 때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을 걱정하던 모습, 사안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하는, 혹은 파악하지 않으려고 하는 지적인 무능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