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수년 전 문화일보 칼럼에서 얼핏 볼 때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했었다. 

논설이란 것이 관점에 따라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어떤 논객은 주장하는 바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궤변적 논리나 극단성으로 유명해지곤 한다.

윤창중은 보수적 논객들 중에서도 조갑제, 류근일, 김순덕, 변희재, 전여옥 등과 더불어 좀 심하다 싶은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종편 방송에서 본 그의 모습은 글을 통해 보았던 분노와 증오에 찬 논객의 이미지보다 훨씬 희극적이었다. 

억지스럽기도 하고 익살스럽기도 해서 위협적으로 느껴진다기보다 우스꽝스럽게 느껴졌고 친근감까지 느껴졌다. 

이해가 안된 건 박근혜 정권의 대변인으로 임명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하나,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보면 어느 정도 판단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도 윤창중 씨의 글이나 말을 읽어 봤을 것이다. 

정권 초기, 누구와 의논했는지도 모르게 임명을 단행한 것을 보면 사람에 대한 본인의 판단이 크게 반영된 것일 것이다. 


다음은 문화일보에 고정 칼럼리스트로 쓴 글들이다. 

이 글들을 쓴 분이 국민 통합을 내세우는 대통령이 자신의 뜻을 국민에게 전달할 입으로서 결정했던 사람이다. 


"우파는 한나라당을 내버려둬야 하는가? 여기서 우파 정권이 끝나도록? 그건 아니다. 우파정권이 앞으로 30년은 지속돼야 대한민국이 살 수 있다-우파 30년 집권론! 내년에 친북·종북·좌파가 정권을 잡으면 대한민국은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야 만다. 친북·종북·좌파세력이 자연수명 다하는 날까지, 앞으로 우파가 30년은 집권해야 한다."

     - 右派 30년 집권론   2011년 04월 18일


"1988년 국회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에게 명패를 던졌던 노무현. 20년 후 그 손으로 ‘노무현판(版) 일해재단’을 공 들여 세우고 있다. 

노무현 캐슬과 전두환의 일해재단이 본질적으로 똑같으면서도 굳이 다른 점은 고대광실 타운을 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집금(集金)’하는 방식이다. ‘재단’을 ‘생태 마을’로 이름을 교묘히 바꿨을 뿐. 노무현은 490억원의 세금을 김해시가 제손으로 투자하는 형식으로 쏟아붓고 있고, 전두환은 기업인의 팔을 비틀어 빼앗았다."

     - 노무현 캐슬   2008년 01월 31일


"황위병(黃衛兵)이 벌인 ‘거리의 환각파티’보다 더 견딜 수 없었던 건 대통령 이명박의 비겁함! 비겁하다. 노무현 자살’ 뉴스가 TV에 뜨는 순간 순간들. 국민이 숨죽이며 목마르게 기다렸던 건 정부의 반응이었다. 도대체 대통령 이명박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최고 통치권자의 결정적인 말 한마디는 여론의 대세를 가른다. 대통령은 TV화면에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당당히, 당당히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하는 것. 그게 비상상황에서 대통령이 취해야 할 기본이다. 그런데? 대통령 이명박은 대변인의 입을 통해 “애도한다”는 한마디를 던지고 전투경찰대가 빙빙 둘러싼 구중궁궐 청와대 속으로 깊숙이 숨어버렸다. 왜, 당당하게 “법과 원칙에 따른 정당한 수사였다. 애도한다”고 말하지 못했는가? 대통령이 청와대 안에서 침묵모드로 들어가는 순간, 저 벌떼같은 황위병들은 대통령을 만만하게 볼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한다. ... (중략) ....6월이 끝날 때쯤이면 대한민국은 황위병 세상으로 뒤집어질 것. 황위병 세상이!"

     -‘황위병’ 앞에 고개 숙인 정권   2009년 06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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