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항상 내세가 있다면 그것은 덤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직관으로는 내세란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있다면 나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신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신이 존재하느냐고? 그건 신을 정의하기 나름 아닐까?

그는 세상 전체, 또는 세상 너머에 있는 무엇인가가 신이라고 생각했고,
그 존재가 어떤 것인지는 이해할 도리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 신이겠는가?

뭐 이런 식으로. 편의적으로 적당히 생각하면서 그냥 산 것이다.

당연히 신으로서는 이런 태도가 매우 불만이었다.

신은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관심도 두지 않는 그의 일생동안 맘껏 재앙을 내렸다.

그리고 이승의 생을 마치고 심판(이랄 수도 있겠고 리뷰라고 할 수도 있는 자리)에 끌려나온 그에게 자신이 내린 재앙들을 주욱 열거하고는 물었다.

"불만있냐?"

그는 신이 좀 속이 좁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신이 제시한 섭리에 불만을 가질 수 없었다. 신은 나름대로 완전한 존재이고 그가 마련한 섭리 또한 그러했다. 그렇지 않으면 신이고 섭리이겠는가?

그래서 불만 없다고 대답하자, 신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까지 수천억의 영혼을 상대하면서 신이 어떤 불만을 제시하는 영혼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인간과 다르게 신은 수천억 번째의 대답에도 만족을 느꼈다.

신이란, 인간으로선 불가해한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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