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역설이 역설인 이유는, 우주여행을 다녀온 형이 지구에 머물러 있던 동생보다 더 어리기 때문이 아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우주선 안의 시간이 우주선 밖에서보다 느리게 흐른다는 건 상대성이론의 결론이지 역설이 아니다. 

역설처럼 보이는 현상은, 상대성 때문에 발생한다. 

지구에 있는 동생 입장에서는 우주선이 움직이는 것이고, 우주선 안에 있는 형의 시간이 느리게 간다. 

하지만 우주선 안에 있는 형 입장에서는 지구가 움직이는 것이고, 지구 위에 있는 동생의 시간이 느리게 간다. 

(우주선이 지구에 대해 등속운동을 하고 있다는 가정에서)

그렇다면, 누구의 시간이 정말 느리게 흐르고 있는 것일까? 동생의 시간일까, 형의 시간일까?

형이 우주여행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왔을 때 나이를 덜 먹은 건 형 쪽일까, 동생 쪽일까? 


이 역설의 해답은 물론, 형이 지구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가속운동을 통해 우주선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에 있다. 

가속운동은 등속운동과 달리 상대적이지 않다. 

등속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우주선의 관점에선 지구가 움직이고, 지구의 관점에선 우주선이 움직인다. 

하지만 우주선이 가속운동을 하는 동안 우주선 안에 있는 형은 우주선 앞으로 자신을 끌어당기는 힘, 일종의 중력을 느끼게 된다.

(급정거하는 기차 안에서 앞으로 몸이 쏠리는 현상)

이 현상은 지구에 있는 동생은 느끼지 않는 현상이다. 

이러한 가속운동을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는 방향으로 진로를 바꾸는 동안, 형의 입장에서 지구의 시간은 많이 흘러간 셈이다. 

지구로 귀환하는 동안 형이 보기에 지구의 시간은 우주선 안의 시간보다 느리게 흐르지만,

이미 지구에선 많은 시간이 흘러간 상태이기 때문에 지구로 귀환한 형은 자기보다 나이를 많이 먹은 동생을 만나게 된다. 


가속 운동을 감안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철이가 광속의 0.87배 정도의 속도로 달리는 은하철도 999를 타고 지구 옆을 지나간다고 하자.

(상대성 이론 공식에 따르면 이 경우 시간은 2배 정도 느리게 흐른다.) 

은하철도는 항상 등속도로 움직인다고 하자. 

지구 옆을 지나가면서 철이는 지구의 연도가 2016년 1월 1일인 걸 보게 된다. 

철이는 자기의 달력을 같은 날짜로 맞춘다. 

1년이 지나 은하철도 999는 지구로부터 0.87광년 떨어진 켄타우르스 알파 행성을 지나게 된다. 

이 행성은 지구와 같은 달력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행성은 지구와 동일한 등속좌표계에 있다고 가정하자. 즉, 지구에 있는 사람이 보기에 이 행성은 정지해 있다.)

철이가 켄타우르스 알파 행성의 옆을 지나가면서 그 행성의 달력을 보면 2017년 1월 1일이다. 

하지만 은하철도 안에 걸려 있는 철이의 달력은 2016년 6월 30일, 겨우 6개월이 지났을 뿐이다. 

켄타우르스 알파 행성에 있는 사람도 은하철도가 옆을 지나갈 때 철이의 달력이 2016년 6월 30일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지구에 있는 메텔에게 알려 준다. 

메텔은 이 소식을 0.87년 후에 듣게 된다.

왜냐 하면 켄타우르스 알파 행성의 친구가 쏘아 보낸 전파가 지구에 닿을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텔은 전파의 속도(=빛의 속도)도 알고 있고 켄타우르스 알파 행성까지의 거리도 알고 있으며 두 행성이 서로에게 정지해 있는 상태란 것도 알기 때문에, 

친구의 소식으로부터 상대성 이론을 검증할 수 있다. 

즉, 철이는 지구를 지나간 후 1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켄타우르스 알파 행성을 지나갔다. 

하지만 은하철도 999안의 시간은 그동안 6개월이 흘렀을 뿐이다.


하지만 철이 입장에서는?

은하철도 999에서 6개월의 시간이 흐른 동안 켄타우르스 알파 행성과 지구의 시간은 3개월만 지나야 상대성 이론에 맞다. 

철이 관점에서 정지해 있는 것은 자신이며, 움직이는 것은 두 행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켄타우르스 알파 행성에서는 1년이 지나지 않았는가? 


여기가 중요하다. 

철이가 자기가 우주여행을 하는 동안 지구에서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켄타우르스 알파 행성에 있는 메텔의 친구에게 물어서는 안된다. 

철이는 자기와 같은 등속운동계에 있는 친구에게서 정보를 얻어야 한다. 

즉, 은하열차 운행 시간표를 보고, 지금 이 시간에 자기가 탄 은하열차와 같은 속도로 지구 옆을 지나고 있을 은하열차(이를테면 은하열차 888)에 문의를 해서 지금 지구의 달력이 어떤 날짜인지를 물어야 한다. 

왜냐 하면 어떤 좌표계에서 흐르는 시간의 길이는 어떤 좌표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상대성이론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미리 약속이 되어 있어서, 철이가 자신이 켄타우르스 알파 행성을 지나는 그 시점에 지구 옆을 지나는 은하철도 888의 역장이 지구의 달력을 확인하고 철이에게 전파를 발사한다고 가정하자. 

철이는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전파를 수신하게 되는데, 상대성이론에 의한 자신의 예측이 맞았음을 확인한다. 

즉, 지구의 달력은 2016년 3월 31일이었다. 

자신이 6개월 동안 은하열차를 타고 있는 동안 지구에서는 3개월 밖에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철이의 입장에선 은하열차의 시간으로 2016년 6월 30일에 두 열차가 동시에 각각 두 행성 옆을 지나갔다. 

하지만 행성 주민들의 입장에선 먼저 지구 옆을 2016년 3월 31일에 은하열차 888이 지나가고, 2017년 1월 1일에 철이의 은하열차가 켄타우르스 알파 행성 옆을 지나갔다. 

두 사건이 한 쪽 관점에서는 동시에 일어났지만 다른 쪽 관점에서는 서로 다른 시각에 일어난 셈이다. 


행성의 주민들이 보기에, 3월 31일에 지구 옆을 지나가면서 은하열차 888의 역장이 철이에게 보낸 전파는 철이의 우주선을 따라잡는 데 한참 걸려서 철이에게 도착한다. 

왜냐 하면 철이의 은하열차는 전파와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기 때문에 철이에게 보낸 전파가 켄타우르스 알파 행성에 도착할 즈음에는 이미 많은 거리를 지나가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행성의 주민들 관점에서는 먼저 은하열차 888 역장이 철이에게 전파를 쏘고 난 한참 뒤에 철이가 켄타우르스 알파 행성을 지나가고 그 뒤에 전파가 철이의 은하열차를 따라잡아 철이에게 도착한다. 

하지만 철이 입장에서는 은하열차들은 모두 정지해 있고 행성들이 움직이기 때문에, 역장의 전파는 상대적으로 짧은 거리를 지나 자신에게 도착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대충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럼 쌍둥이 역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철이가 켄타우르스 알파 행성을 지나는 동시에 반대방향으로 그 행성을 지나가는 다른 은하열차(이를테면 은하열차 777)가 있다고 하자. 

미리 약속이 되어 있어서, 그 은하열차의 역장은 행성을 스쳐가는 그 순간 지구를 같은 방향으로 지나가는 다른 은하열차(666)와 연락을 해서 그 순간의 지구의 날짜를 알아낸다. 

그 날짜는 언제일까?

2017년 9월 1일이다. 

은하열차 777은 6개월 동안 궤도를 달려 지구 옆을 지나가게 될 터인데, 그동안 지구에서는 3개월이 흐를 것이다. 

하지만 행성의 주민들이 보기에 은하열차 777은 2017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1년의 시간에 걸쳐 지구로 향하는 궤도를 달리게 된다. 


결론적으로, 쌍둥이 역설이 역설이 아닌 이유는, 좌표계가 달라지면 '동시'의 개념도, 사건이 일어나는 순서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행성의 주민들 관점에서는 은하열차 888이 지구 옆을 지나가고, 한참 후에 은하열차 999가 켄타우르스 알파 행성을 지나가고,

그와 동시에 은하열차 777이 반대 방향으로 켄타우르스 알파 행성 옆을 지나가고, 몇 개월 후에 은하열차 666이 지구 옆을 지나가고, 그 후에 은하열차 777이 지구 옆을 지나간다. 

은하열차 승객들의 관점에서는 은하열차 888과 999가 동시에 지구와 켄타우르스 알파 행성을 지나가고, 

그와 동시에 은하열차 666과 777이 반대방향으로 지구와 켄타우르스 알파 행성을 지나가고, 

마지막으로 은하열차 777이 지구 옆을 지나간다. 


내가 이 문제에 의문을 품은 다음 여러 자료를 찾아 봤으나 명쾌하게 해결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로서는 이 은하열차 비유가 꽤 괜찮다고 생각된다. 

다른 분들한테는 어떨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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