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치인의 연설에서 별로 감동 받은 적이 없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경우엔 어떤 말을 하면 그 사람이 느껴졌다. 그런 사람들의 연설은 재미있다. 
하지만 많은 정치인들의 연설은 그냥 좋게 보이려는 말들의 성찬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개중에는 대통령의 국정연설처럼 앞으로 자신이 추진하려는 일들의 방향성 같은 것이 들어 있을 때도 있지만 그런 내용이 그다지 재미있지 않을 때가 많다. 
나는 하긴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의 연설이나 마틴 루터 킹의 유명한 연설에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았으니, 명연설과 그렇지 않은 연설들에 대해 제대로 평가할 자격은 없다고 하겠다. 고상한 단어들과 이상들로 채워진 정치적 연설에 대한 취향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예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연설은 아테네 병사들을 추모하는 페리클레스의 연설과 유명한 '피와 땀과 눈물'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처칠의 연설 정도이다. 

한 번 다음 연설의 문구를 읽어 보자. 

헌법은“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천명합니다. 정치인은 주권자의 대리인입니다. 국민이 맡긴 권력은 오직 국민만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서러운 국민의 눈물을 닦고, 절망하는 국민께 꿈과 희망을 드려야 합니다. 강자의 횡포를 억제하고 약자와 동행하며 모두가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작년 가을 이재명 대표가 국회에서 한 원대교섭단체 대표 연설의 첫 부분이다. 
따분하다. 정치인이 주권자의 대리인이라는 것, 국민이 맡긴 권력은 국민만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 이런 말들에서 뭘 느껴야 할까? 누구라도 동의할 수 있는 말이란, 아무 의미 없는 말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기자들에 대한 답변에서도 이재명 대표는 질문과 별 관계가 없는 동문서답을 하거나 하나마나 한 원론적인 답변에 그칠 때가 많다. 
"검찰이 이번에 새로운 혐의점을 발표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번에 또 신작 소설을 쓰는 모양인데 흥행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비명 의원들의 통합비대위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민주주의 정당에서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재미 없고 아무 유익이 없고 지루하다. 

하지만 한동훈 전장관의 말은 동의 여부를 떠나서 항상 재미있는 포인트가 있다. 재미가 있고 포인트가 있으니까 언론에 계속 해당 발언 영상이 반복적으로 회자가 된다. 
300명의 여의도 문법이 아니라 5천만이 쓰는 일반인의 문법으로 이야기하겠다고 한 말이나, 단식으로 사법시스템이 정지되는 선례가 생기면 잡범들도 그렇게 하지 않겠느냐 와 같은 말들이 그렇다. 내용에 대한 동의 여부나 적절성 여부를 떠나서 말에 주목하게 만들고 메시지를 명료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한동훈에게는 있다. 

이번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이 언론에서 자세하게 다루어지는 것도 그런 '말하는 역량'을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근래 들어 다른 정치인의 연설이 이렇게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언론에서 다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연설 중에서 발췌된 두세 문장의 범위를 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한 편의 연설 안에 언론과 유권자들의 주목을 받을 만한 많은 요소들을 담았다. 

이번 연설에서 개인적으로 주목이 되는 문구들 중에서 몇 가지만 뽑아 얘기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오늘은 첫날이니, 저를 이 자리에 불러내 주신 국민의힘 동료 여러분들께 제가 어떤 생각으로 비상대책위원장의 일을 할 지 말씀드리죠.

우선 도입부가 신선하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하나의 간결한 문장으로 연설의 취지를 밝히는데, 이것은 시민들 앞에서 연설을 하면서 자신이 연설을 하는 이유부터 밝히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 정치인들의 연설을 연상시킨다. 하나의 짧은 문장으로 어떤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들고 다닌 적도 있는 만큼, 그런 고대의 연설들의 스타일에 익숙한 바가 있을 것이다. 
다음의 대목들에서도 처칠을 인용하거나 서태지의 노래 가사를 인용한 부분들이 나오는데, 그런 모방과 활용을 업신여기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좋은 모범들을 가져와 변형시켜 적용하는 일도 역량이고, 청중들에게 한 번 검증된 적이 있는 강한 인상을 남기는 효과가 있으며, 그런 인용이 또다른 화제가 되기도 한다. 

그런 당을 숙주삼아 수십년간 386이 486, 586, 686되도록 썼던 영수증 또 내밀며 대대손손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해야 합니다.

메시지는 익숙하지만, 짧은 문장 안에 많은 정보가 함축되어 있다. 한때 젊었던 이들이 나이가 들면서 후세대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는 것, 과거의 운동권 경력에 대한 보상으로 특권을 누린다는 것, 민중의 혁명의식을 일깨우는 선도적 엘리트의 역할을 자임했던 계몽적 의식과 행태를 아직도 갖고 있다는 것을 "386이 486, 586, 686이 되도록", "썼던 영수증 또 내밀며",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과 같은 짧고 간결한 표현으로 전달해 낸다. 이런 인식의 타당함을 논외로 하고 표현력에 있어서는 발군이라 하겠다. 

한동훈(앞으로 편의상 직위는 생략하겠다)은 민주당의 핵심적인 약점들을 간결한 논리로 공격하고 처칠을 인용해 가면서 적에 맞서야 하는 절박한 명분을 강조한 다음, 몇 개의 문장만으로 방향을 틀어 주제를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으로 옮기고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저는, 정교하고 박력있는 리더쉽이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만날 때,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의 삶이 좋아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와 개딸전체주의, 운동권 특권세력의 폭주를 막는다는 것은 우리가 이겨야 할 절박한 이유이긴 하지만, 그것만이 우리가 이겨야 할, 우리 정치와 리더쉽의 목표일 수는 없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낸 위대한 대한민국과 동료시민들은 그것보다 훨씬 나은 정치를 가질 자격이 있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국민의힘이 추진할 정책들의 분야를 열거하는데, 이 부분에서도 한동훈의 경제적인 표현 능력이 드러난다.
 
인구재앙이라는 정해진 미래에 대비한 정교한 정책, .. 안보, 경제, 기술이 융합하는 시대에 과학기술과 산업 혁신을 가속화하는 정책, .. 명분과 실리를 모두 갖는 원칙있는 대북정책, 기후변화에 대한 균형있는 대응정책, 청년의 삶을 청년의 입장에서 나아지게 하는 정책, ..

이 문단은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책 분야들을 나열할 뿐만 아니라 각 정책마다 추진 전략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인구 정책은 정교하게, 대북정책은 명문과 실리를 함께 살리면서, 기후변화 대응은 균형있게, 청년 정책은 청년의 관점에서라는 식이다. 나는 기후변화 대응은 '과감하고 절박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균형있게'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와 같은 전략의 알맹이들이 불과 몇 개의 단어로 표현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정책과는 한참 거리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들으나 마나 한 원론의 수준에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그가 언급한 '정교하고 박력있는 정책'(이 또한 소수의 단어로 원론을 넘어서고 있는 표현의 예이다)을 기대할 수 있게 만드는 대목이다. 

연설의 마무리는 다음과 같다. 

여러분, 동료시민과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빛나는 승리를 가져다줄 사람과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까? 우리 모두가 바로 그 사람들이고,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함께 가면 길이 됩니다. 우리 한번, 같이 가 봅시다.

앞부분은 서태지의 인용이고, 마지막 줄의 앞부분은 노신의 인용, 마지막 문장은 처칠의 연설 마무리를 연상시킨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런 인용 능력도 역량이다. 문제는 감정에 호소하는 이 문장들이 의도한 효과를 가졌겠는가 하는 것이다. 
연설의 맨 앞에서 밝혔듯이 이 연설의 청중은 일반 시민이 아니라 '국민의힘 동료'들이다. 그들에게는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연설에 대해 나는 매우 높게 평가한다. 
어떤 메시지를 평가할 때는 먼저 그 메시지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 논란의 여지 없이 흠 없는 사람만이 발언과 비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설을 하는 사람이나 그가 속했던 조직, 새롭게 대표하게 된 정당의 잘잘못은 연설의 가치와 다르게 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최근 언론 보도나 정치인들 사이에 공개적으로 주고받는 말들을 통해 정치를 보면, 정치가 게임과 다를 게 없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습니다. 마치, 누가 이기는지가 전부인 것 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게임과 달리, 정치는 '누가 이기는지' 못지 않게, '왜 이겨야하는지'가 본질이기 때문에 그 둘은 전혀 다릅니다. 

국민의힘의 변화, 민주당의 변화, 제3세력의 등장 등으로 앞으로 총선이 어떤 국면으로 진행될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어디가 이기느냐 못지 않게 중요한 질문은 누가 왜 이겨야 하는가일 것이다. 
한동훈은 핵심을 잘 짚고 있다. 
말의 역량은 생각의 역량이기도 하며 정치의 역량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한동훈은 점수를 따고 있다. 
앞으로 닥쳐오는 더 풀기 어려운 문제들을 통해 그가 어디까지 역량을 증명하는지가 앞으로의 정치인생과 국민의힘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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