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우리나라에서 정치가 가장 핫 했던 시절은 1987년이지 않을까 싶다. 그때는 권력의 부정의가 명확했기 때문에 국민들은 한 뜻으로 모였고 정치란 진지한 이슈였다.
그 후 형식적인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삼십년 가까이 흐르면서, 이제 정치는 우리나라의 3류들이 모여 세력 다툼이나 벌이는 일처럼 여겨지게 되었고, 아마 우리나라에서 마음대로 폄하해도 괜찮은 거의 유일한 직업이 국회의원이지 않았을까 싶다.
필리버스터는 특이한 이벤트다. 국민이 언론의 편집을 거치지 않고 국회의원들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대면한 적이 없었고, 이렇게 응원한 적도 없었다. 적어도 87년 이후에는 노무현, 유시민 등 특정 정치인 몇 명 외에는 거의 없었다.
인터넷으로든 케이블 티비로든 국회방송을 직접 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기껏해야 전국민의 1%가 1시간 정도라도 보았을까? 거기다가 사실 나만 해도 수십분 이상 집중해서 보기는 힘든, 재미없는 이야기가 태반이다.
하지만 언론의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직접 다가오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낯설고 신선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직접 지켜 본 소수의 사람들의 반응은 이제까지 정치인에 대해 가져왔던 일반 국민들의 반응과 매우 다르다. 경청하고 지지를 표하고 이제까지 자신이 알았던 것이 부족했다는 식의 의견들인데, 그동안 냉소와 비판은 넘쳐났어도 정치나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는 일반 국민의 반응으로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나만 해도 정치에 대한 태도가 상당히 피상적이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문재인 대표 당시 문의원이 억지로 밀려나게라도 된다면 민주당을 지지할 필요는 없어진다, 라는 식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의 야당은 특정 개인과 그 개인의 지지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에서 한 부분을 이루는 어떤 부류의 믿음과 태도, 그리고 그것을 다양한 개성으로 구현하는 개인들로 이루어진 정당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모습들이 언론의 벽을 넘어 아주 일부이더라도 국민에게 직접 가 닿았다. 이것이 숫자 계산을 넘어서 중요한 변화의 기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비율로는 적더라도 상당수의 사람들의 인식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국회의원들 스스로도 신선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때로 좋은 틀 안에서 집중하여 노력하면, 높은 공덕으로 쌓이게 된다.
참고로 나는 20대부터 24대 국회까지 불출마를 선언한다. 앞으로 16년 동안은 내공이 부족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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