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어떤 독재자가 많은 악행을 저지르다가 권좌에서 쫓겨난 후 자신에게 조언해 주었던 참모가 자신의 실수들을 만류하지 않았다면서 비난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참모는 억울했다. 자신은 항상 독재자에게 옳지 않은 일을 지적해 주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독재자는 그 항변에 다시 반박했다. "당신은 말만 했지 나를 설득하지 않았잖소." 

비겁해지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악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고 판단 유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쉬운 일이다. 
옳지 않은 행동을 보고 그것을 비판하는 말을 하거나 동참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이 악에 연루되는 일을 피하는 일은 그보다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악의 실행을 막는 일에 대한 관심이 자기자신을 선하게 유지하는 데 대한 관심을 따르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면죄부를 얻기 위해 몇 가지 생색을 내고는 물러 앉는 것이다. 
"그것 봐, 내가 그렇다고 얘기했었잖아!"

악에 동참하거나 묵인하는 일에 비한다면, 악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정하고 표현하는 일만 해도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당신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갖는 것 이상의 관심을 일의 결과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 충분히 헌신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보다, 올바른 결과를 소망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사람은 단련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을 근본적으로 죄인으로 보고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의로와질 수 있다고 보는 기독교적 관점은 일리가 있다. 
신자의 역할은 하나님의 의가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지, 스스로 의로와지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당신이 1940년대 독일에 거주하는 젊은이로서 러시아 땅으로 끌려가 전투에 동원되는 것을 면제받고자 경찰에 자원입대한 상황이라면, 
당신은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로 상관의 명을 따라 유태인들을 어린아이, 노인, 여자 가릴 것 없이 학살하는 일에 동참했을 것이다. 
스스로의 선함을 자신하지 말라. 
하지만 선한 행동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선하게 행동하고자 하는 노력을 그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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