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한테는 이 말이 일종의 동어반복인 것처럼 여겨졌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라면 행복이란 무엇일까? 인생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좋은 상태이다. 

그런데 오늘 신문에서 리처드 셀이라고 하는 미국 왓튼스쿨 교수와 관련된 글을 읽었다.  
젊을 때 세계를 방황하다가 우리나라 송광사에까지 왔었다는 이 교수는 행복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 
순간적이고 긍정적인 감정, 노력과 희생이 따르는 장기 목표를 달성할 때 획득하는 결과, 
그리고 지혜로운 경험이라고 부르는 것, 즉 스스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 영혼이 느끼는 경험이 그런 유형들이다. 

이런 구분은, 막연하게 행복을 추구한다고 하는 것보다 더 구체적인 지향점들을 제시해 준다. 
어떤 행복이 더 가치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마다 자기가 추구하는 행복의 형태는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순간순간의 행복을 그 자체로서 향유하는 것을, 어떤 사람은 꾸준한 노력에 의한 성취와 발전을 더 중요시한다. 

아마 아리스토텔레스로 돌아가자면, 중용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원하는 것을 손쉽게 얻는 것도 행복이지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장애를 극복하는 것도 행복이다. 
어떤 행복은 소유와 향유를 통해 얻어지고 어떤 행복은 목적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얻어진다.
우리가 행복해지는 데에는 소소한 낙들과 진지하게 추구하는 목적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의지하기 적당한 유형의 행복은 셀 교수가 지혜로운 경험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한다. 
감정은 통제하기가 어렵고, 노력과 희생을 한다고 해서 목표가 달성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좀더 지혜로와지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알게 된다면, 
그 결과나 만족감에 연연해 하지 않고 그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그 나름의 행복을 가져다 준다. 
아마 스피노자가 추구했던 기쁨이 그런 종류가 아닐까?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불교도가 추구하는 것도 그런 행복이 아닐까? 

행복이라는 개념처럼 뭉뚱그려져 있던 개념을 나누어 보면, 생각을 더 나아가게 할 수 있다.  

행복과 성공, 직업선택에 대해서 다른 이야기들도 있으니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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