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미이 라니스터는 원작소설의 1권과 2권에서는 화자 중 한 명이 아니다.
원작소설을 구성하는 챕터들은 각각마다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의 이름이 제목으로 붙어 있고, 그 등장인물의 관점으로 기술이 된다. 1권의 가장 분량이 많았던 등장인물은 에다드 스타크인데, 끝부분에서 죽음을 당한다. 주로 캐틀린, 존, 브랜, 아리아, 산사 등 스타크 가문의 등장인물들이 화자의 역할을 하고 있고 그밖에 티리온 라니스터와 대너리스 타르가르옌 또한 화자이다. (롭 스타크는 화자에 속하지 않는다. 스타니스는 화자가 아니지만, 다보스는 분량은 적은 편이어도 화자이다. 테온 그레이조이는 2권에서 화자였다. 4권과 5권에서도 새로운 화자들이 등장한다.)
제이미 라니스터는 3권부터 새롭게 화자로 등장한다. 그전까지는 에다드나 캐틀린의 관점에서만 보여지다가 자신의 목소리를 갖게 되면서 그는 왕좌의 게임 등장인물들 중에서도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 중 한 명이 된다. (참고로 3권부터 새롭게 화자가 된 또한 사람은 야경대의 뚱보 샘웰 탈리이다.)
제이미 라니스터는 1권에서 세르세이 라니스터와 밀회를 즐기다가 이를 목격한 브랜 스타크를 떠밀어 버리면서 확실한 악역으로 자리매김한다. 브랜을 떠밀 때 사랑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말하는데("The things I do for love") 이것을 번역자가 "난 이런 일이 너무 좋아"라고 번역하는 바람에 사이코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런데 소설의 1권과 2권에서는 제이미에게 감정이입을 할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에 이 번역을 떠올리면서 좀 이상한 걸 하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제이미는 에다드에게 경고를 주겠다며 그의 부하들을 킹스랜딩의 거리에서 살해하고, 남부로 진군하는 롭 스타크의 군대를 맞아 무시무시한 활약을 보여주지만 의외로 쉽게 포로로 잡혀 다행이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을 줄 뿐이다. 다만, 티리온이 세르세이와는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제이미와는 우애가 높다는 것이 좀 의외로 느껴질 뿐이었다.
제이미 라니스터의 별명은 킹슬레이어, 즉 왕 시해자이다. 그는 타르가르옌 왕조의 마지막 왕인 아에니스 왕의 킹스가드(근위기사)의 한 명이었는데, 로버트왕의 반란 시기 다른 킹스가드들은 전쟁터에 나가지만 제이미는 유일하게 왕의 곁에 머무르다 반란 막바지에 왕을 살해한다. 킹스가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왕을 보호한다는 서약을 하기 때문에, 킹슬레이어라는 이름은 서약을 어긴 자, 명예를 잃은 기사라는 것을 의미이다.
하지만 그가 왕을 죽인 것은 불에 대한 집착과 광기에 빠져 있던 아에리스 왕이 킹스랜딩을 불태워버리려고 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 사실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데, 제이미의 성격은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티리온이 난장이이고 브랜이 불구이며 존이 서자라는 핸디캡을 갖고 있는 것처럼 제이미는 왕을 죽인 킹스가드, 킹슬레이어라는 불명예를 멍에로 지고 있다. 제이미의 에피소드에서 명예는 중요한 주제이다. 캐틀린이 제이미를 석방한 것은 티리온이 킹스랜딩에서 핸드로 있었던 당시 산사와 아리아를 제이미와 교환한다는 조건으로 협상을 제의해 온 것에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드라마에서 어떻게 묘사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원작에서는 그렇다.) 제이미는 석방이 되는 대신 산사와 아리아를 가족에게 돌려 보내야 하는 빚을 지게 되었다. 제이미는 사람들의 평판은 아랑곳하지 않지만 이 의무는 진지하게 대하고, 이것이 향후의 플롯을 진행시키는 동기 중 하나가 된다.

브리엔느도 그에게 영향을 미친다. 브리엔느는 고지식하게 약속과 의무에 충실하다. 제이미를 킹스랜딩까지 안전하게 호송하는 것이 자기의 임무이기 때문에 제이미를 경멸하면서도 그를 보호하고자 최선을 다한다. 브리엔느는 고지식하지만 둔한 것은 아니다. 제이미는 브리엔느와 함께 하면서 그녀의 빠른 상황 판단력이나 실력에 대해 점점 높이 평가하게 되며, 그녀의 의무와 명예에 대한 고지식한 충실함을 비웃는 동시에 감명을 받는다. 킹슬레이어라는 명칭에 아랑곳하지 않아 왔지만, 브리엔느가 킹슬레이어라고 부르면 상처를 받는다.
그가 하렌할로 돌아가 브리엔느를 구출하는 장면은 음울하고 답답한 원작에서 몇 안되는 통쾌한 장면 중 하나이다. 제이미의 장점이 제대로 발휘되는데, 그는 정확한 판단력으로 상대방의 동기를 계산하고 과감하게 밀어붙여 뜻을 관철시키고 무모한 용기로 곰 앞에 뛰어든다. 헌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나쁜 남자 캐릭터가 아무리 상황을 계산했다지만 뜻대로 안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 자신을 내던져 고지식하고 못생긴 여자를 구하는 장면은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안겨 준다.

아직 처녀인 거 맞지? 나는 처녀만 구출하거든. (소설 상의 제이미 대사)

제이미 라니스터는 작품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대사를 말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보다 입담이 좋은 사람은 티리온 라니스터 정도일 것이다. 이 두 형제는 재치있는 농담에 능하지만, 그 재치가 주로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는데 쓰이기 때문에 친구를 사귀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스포일러를 조금 하자면, 티리온은 나중에 자신의 농담하는 버릇 때문에 숱한 매를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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