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이론을 요약하자면, 자본주의는 자체의 모순으로 인해 멸망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가 올 것이다는 것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한 가지 특징적인 부분은, 자본주의가 악하기 때문에 멸망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법칙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멸망할 것이라는 부분이다. 
그의 예언은 물론 틀렸고, 이론에는 한계가 많다. 
생각해 보면, 그는 19세기의 수많은 이론가 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이론에서 틀린 점을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의 이론이 완전히 유효성을 잃은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마르크스주의의 부당하고 사악한 대변자 역할을 했던 소련 연방의 해체 이후에 더 설득력을 가지는 부분들이 있다. 
우선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고 경제력이 집중되고 있다. 
경제력 집중은 마르크스가 예언한 자본주의 고도화와 다가오는 파국의 징후이다. 
마르크스가 그린 그림을 보자.  
자본은 본성 상 지속적으로 몸집을 불려나가는데, 초기의 자유경쟁은 점차 소수의 독점자본 간 경쟁으로 바뀌어 간다. 
자본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점점 가난해져가고, 자본은 자신이 생산한 상품을 판매할 곳을 찾지 못한다. 
자본의 수익성은 하락하고 공황이 찾아오며, 소외된 사람들은 혁명을 통해 자본, 즉 생산수단을 공공의 소유로 만든다. 
이 그림은 80년대보다 현재의 상황에 훨씬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물론, 반론의 여지는 많다.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처럼,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교정을 통해 지속해 나간다. 
현대의 자본주의국가는 독점을 막기 위해,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부가 재분배되기 위해 여러 수단을 취한다. 
자본주의 체제와 공산주의 체제 사이에는 중간적인 사회들이 많이 존재하고 어떤 국가든 순수한 자본주의 원리에만 맡겨지지는 않는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상부구조는 하부구조에 의해 결정이 되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진정한 주인은 자본가들이다. 
그렇지만 대의민주주의가 가진 역할은 자본의 논리에만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권을 가진 대중의 이익에 부합하는 부분도 상당히 높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가진 부르주아와 가진 것이 없는 프롤레타리아의 구분도 제한적이다. 
부유하고 이기적인 자본가와 열악한 공장 환경에서 단조로운 노동에 종사하는 극빈층 노동자의 모습은 그다지 전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억대 연봉을 받는 전문직과 대기업 근로자 뿐 아니라, 일반 근로자들의 생활도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다.  
마르크스가 그린 그림처럼 계급적 갈등이 심화되기보다는 사회 계층이 다양해지고 일원적 잣대로 규정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앞에서 말했듯이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것은 19세기의 관점을 담은, 제약이 많은 이론이다.
그렇지만 마르크스주의가 아직도 생명력을 갖는 것은 다른 주장이 갖지 못하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그리고 영감을 주는 통찰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자본주의는 영속적인 사회질서라기보다 끊임없는 자기조정을 통해 건강성을 유지해 나가야 하는 불안정한 체제이다. 
자유시장 이론은 무한경쟁이 시장을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만들어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 이야기한다. 
누군가가 부당한 이득을 취한다면 시장이 개입하여 새로운 경쟁자가 이익을 나누어 갖게 만들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대자본과 소자본의 경쟁은 공정하지 않다. 
그 불공정함은 자본의 규모가 커질수록 심화된다. 
현재의 대자본은 과거의 대자본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힘의 편차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그러한 경제력의 집중은 사회 구성원의 다수를 소외되게 만들고 자본 스스로의 성장 활로를 찾기 힘들게 만들어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역사가 10년 남짓 밖에 안되는 IT 혁신 기업들이 전통적인 대기업들을 망하게 하는 현실에 맞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자본이 없이 아이디어와 프로그래밍 실력만 가진 젊은 창업가들이 몇 년 사이에 세계적으로 알려진 기업을 일구어내지 않는가? 
나는 그렇게 새로운 귀족이 되는 사람들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를 묻고 싶다. 
작은 회사가 저절로 성장하지는 않는다. 
벤처캐피탈이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에 자본을 투자하여 성장시키는 것이다. 
대박을 내는 아이디어와 드문 재능을 갖춘 일부의 성공신화에 가리워져 그 뒤에 동작하는 자본의 힘이 가리워지는 것은 아닐까? 

대기업총수와 일반적인 근로자를 대비시키는 것보다 더 본질적인 모습에 가깝게 자본과 노동의 상징을 찾아보자면, 
남들보다 탁월한 실적을 내는 전문직 근로자와 대리기사를 비교하는 것이 적합해 보인다. 
대리기사는, 차별화된 능력에 따라 성과에 차이가 나지 않는 대표적인 직업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 실적을 낼 수 있게 만드는 개인의 역량이 가장 중요한 자본 중 하나이다. 
이와 같이 자본을 '이미 갖추어져 있는 것'이라고 폭넓게 정의하고, 노동을 '갖추어진 것에 의존하지 않고 일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비록 억대 연봉자들이 늘어나는 현실이라 하더라도 자본과 노동의 격차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경제가 고도화될 수록,  아무 가진 것 없이 각별한 노력으로 자본을 갖추어나가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는 부잣집 자식들이 공부도 잘할 뿐 아니라 성격도 좋고 친화력도 좋다. 
사회적 자본을 쌓아가는 역량은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자본 중 하나인데, 그런 능력도 가정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 재산 뿐만 아니라 경쟁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점점 그 격차를 극복하기가 어려워지고 있고, 또한 그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실업자와 전문성을 요하지 않는 직업의 종사자들, 언제든 기술이나 다른 환경에 변화에 의해 자신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 가치를 잃고 밀려날 위험에 놓여 있는 사람들.  
절대적인 생활환경은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사회 속에서 인정을 받고 스스로에게 만족하며 더 나은 운명을 만들어갈 기회는 늘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아마 마르크스가 말하는 소외된 프롤레타리아의 수가 늘어나고 처지가 악화된다고 하는 현상의 현대적 모습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오바마도 마르크스주의자다.
우리나라에선 흔히 종북좌빨이라 부르지만..


데이터가 얼마나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본의 수익률이 계속 떨어지는 추세를 보여준다. 적어도 우리나라의  추세에는 직관적으로 맞는 것 같다. 부자들은 여전히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자본이 축적될수록 돈을 벌어들일 곳은 줄어든다. 성장 동력은 떨어지고, 불황은 점점 극복하기가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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